[권은경] ‘김정숙’이 대변하는 북한의 ‘이상적 여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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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의 중반을 넘어서면 세계는 겨울 휴가에 들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한 해의 노동을 결산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 휴일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쇠는 것은 종교적 성격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관행에 가까워서, 전 세계에서 십여 개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이날을 기념합니다.

온 가족이 모여 포근한 밤을 보내며, 선물을 주고 받을 성탄절 아침을 기대하는 24일 성탄 전야가 더 신나는 날인데요. 북한은 세계와는 다른 의미로 12월 24일을 기억합니다. 바로 ‘혁명의 어머니’, ‘항일의 여성영웅’로 불리는 김정숙의 생일이지요.

김정은 총비서의 할머니, 선대 지도자 김일성의 부인으로 모든 북한 여성이 마땅히 따라 배워야 할 ‘숭고한 모범’으로 칭송 받는 인물이 바로 김정숙입니다. 김정은도 집권한 이후 조부 김일성을 잇는 백두혈통에 의거해 정권을 안착시킬 노력의 일환으로, 2014년 김정숙 생일을 기해 ‘김정숙 전기’를 출판했습니다.

‘김정숙 전기’ 출판 10주년을 앞두고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모범적인 북한 여성상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에는 북한 주민들이 학교에서 수도 없이 외우고 배운 내용들이 수북이 담겨 있는데요.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혁명적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동시에 수령을 결사옹위한 ‘백두산 3대 장군’에 걸맞게 초인간적 영웅으로 표현됩니다.

‘김정숙 전기’는 ‘한 생을 다 바쳐 수령결사옹위를 조선혁명의 영원한 재보로, 혈통으로’ 빛낸 업적으로 김정숙을 추앙합니다. 남편 김일성의 신변안전을 위해 ‘적 장교를 단방에 쏘아 눕히고’ 김일성을 겨누던 ‘기관총수들을 명중사격으로 쓸어’ 눕혔다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강조하는데요. 특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김일성의 신발에 깔아줬다는 등 수 없이 많은 ‘영웅담’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김정숙의 모습은 오늘날 김정은 체제에서 이상적으로 보는 여성상으로 볼 수 있는데요. 여성 자신의 업적이나 독립적인 사회 성원으로서 개인적 성장 또 이를 통한 사회적 기여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역사에도 북한의 김정숙처럼 존경할 만한 여성 영웅들이 많습니다. 모든 나라들은 역사적인 영웅을 내세우고 추앙함으로써 이들을 토대로 개인의 성취를 장려하고 사회적 협력과 발전을 추구하는 교양으로 활용합니다. 따라서 역사적 영웅들은 다른 누군가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육탄이 될 준비’를 하며 보좌했다거나, 지도자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존경하는 인물 반열에 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개인의 업적을 통해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예를 들어서 윁남(베트남) 인민군 최초의 여성장군인 응우웬 티딘 장군을 들 수 있겠는데요. 미국에 대항한 베트남 전쟁에서 ‘민족해방전선’의 창립성원이자 부사령관으로 지도력을 발휘해 전쟁에 임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통일 후에는 베트남 공산당 중앙당위원회에서 일하며 인민군의 장군으로 복무했습니다.

남미 대륙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는 아르헨티나도 국가적 여성 영웅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에바 페론은 정치인이자 배우이며 사회활동가입니다. 김정숙과 유사한 점은 남편이 1955년까지 10년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이라는 점입니다. 페론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인기영합주의 또 민족주의 이념에 기대 나라를 운영했기에 평가는 분분합니다만, 그의 아내 에바 페론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건, 주거환경을 개선했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제도를 만들고 여성 권리와 노동자 복지를 위해 일했습니다. 특히 1947년 여성 참정권을 확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여성들의 정치활동 참여를 확산하기 위해 정당을 창립하는 등 여러 정치활동도 이어갔습니다.

이들 외에도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인도의 인디라 간디도 여성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업적으로는 인도의 1960년대 농업혁명을 주도하고 산업 기술 중심의 국가로 현대화하는데 기초를 놓은 것으로 존경 받습니다.

이러한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 영웅들과는 달리 북한 여성의 모범으로 내세우는 김정숙은 자기 자신의 업적은 딱히 보이는 것이 없는데요. 북한 당국은 단지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모친, 김정은의 조모라는 이유로 북한의 모범적인 여성상을 그려냅니다. 즉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개인의 능력과 전문 기술, 지식을 키우라는 말 대신 ‘김정은 시대의 여성 혁명가’ 즉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안해로서의 위치와 책임감을 항상 자각’ 할 것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