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사상’과 ‘정신상태’가 제품의 질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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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번 주도 지방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개선이라는 큰 목표 아래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후속 활동에 바쁩니다. 지난 13일부터 양일간 열린 내각 당 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경제관리 개선 방안들이 논의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가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뚜렷한 개변’을 가져오기 위한 방안으로 ‘최대한 증산하고 절약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새로 건설한 지방공업 공장들이 하나둘 준공되면서 경공업 부문의 정책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노동신문 기사도 있었는데요. 인민소비품 생산에서 강조하는 당 정책적 요구는 상품의 질을 제고할 것, 제품의 종류를 확대할 것, 생산 원가를 낮출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어느 부문에서든 당연히 추구해야 할 원칙입니다. 하지만 앞서 ‘증산과 절약’을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경제개혁 조치는 명확치 않으면서 노동자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분위기입니다.

‘제품의 질은 곧 생산자의 사상 정신 상태의 반영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소비재 생산 결과와 관련된 문제를 당국의 비효율적인 폐쇄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의 사상 이념적 문제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똑같이 외치는 정치 구호가 없어도 질 좋은 다양한 소비재를 낮은 원가로도 생산할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공장 기업소가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할수록 노동자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갖추는 것이지요. 그러면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앞다투어 혁신적이고 편리한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할 겁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 가전 박람회인 ‘CES 2025’가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는데요. 소비재의 질 제고와 품종 확대의 성공적 예들로 넘쳐난 행사였습니다.

박람회는 미국 최대 관광지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0일까지 나흘간 열렸습니다. 전 세계 160여 개 국가에서 4,5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혁신 기술과 편리하고도 진기한 제품들을 경쟁적으로 자랑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가들과 신생 기업을 창업한 청년 기업가들은 세계적 기술 발전의 방향과 최신 시장이 선호하는 신제품의 경향을 배우고, 투자처를 찾고, 인맥을 넓히며 자신의 혁신제품들을 평가받는 기회로 삼습니다.

올해는 인공지능 기술을 일상생활 전반에 활용해 소비자 개별의 성향과 특성에 맞춰 편리함을 추구한 전자 제품들이 소개됐습니다.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는 집 안의 가전제품들을 거주자의 건강 관리를 위해 인공지능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연결했는데요. 침대, 시계와 반지 등에 감지기를 부착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매일 점검하고 텔레비전으로는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까지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또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성분을 분석해 냉장고에 부착된 판형 컴퓨터로 요리를 추천하는 등 집안 모든 가전제품을 건강, 의료 관리 체계로 구성한 제품이었습니다.

혁신 사업에 주력하는 중소기업 제품들을 홍보 전시하는 구역에서는 39개 국가에서 1,400여 개의 신규 혁신 사업체들이 기발한 제품들을 전시했습니다.

북한말로는 ‘맹인’이라고 부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팡이에 인공지능 기술을 넣어 장애물을 감지해서 촉각이나 소리로 경고하고 음성으로 길 안내까지 가능한 제품이 선보였고 레이저로 약물을 투입하는 방식의 바늘 없는 주사기, 실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주는 나무 역할을 하는 전자기기, 숟가락에 약한 전류를 흘려서 짠 맛과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환자들이 저염 식사도 맛있게 하도록 도움을 주는 숟가락,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들 수 있게 하는 조끼 등 상상을 초월하는 제품 수천 가지가 선보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사상과 이념, ‘투철한 복무 정신’ 덕분에, 세계 기업의 사업가들이 이런 제품들을 개발한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사업가 개인들이 가진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재미,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발전하려는 자기 계발 욕구와 성취감, 판매로 얻는 경제적 이익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사람을 도우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는 책임 등이 원동력이자 동기입니다.

북한 당국도 인민소비품 부문의 질 제고와 품종 확장을 위해 ‘생산자와 기술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기술 기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이 또한 기술적 지원도 없이 노동자들 자체의 책임으로 맡겨뒀는데요. 북한 생산자와 기술자들이 올해 CES에서 소개된 가전 제품들을 인터넷 영상으로 볼 수만 있다면 이들의 시야와 기술기능 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겁니다.

지금 당장 세계적 첨단의 전자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더라도 과학 기술과 경공업 부문의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크게 트일 것입니다. 이것이 혁신의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인민 소비재의 ‘질 제고’, ‘품종 확대’, ‘원가 저하’는 저절로 따라 오게 될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