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노동신문은 11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 후 한국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사건 발생과 동시에 충격적이라는 뉴스 보도를 하며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한국을 관찰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관련 보도에 대해 결정할 것들이 많았는지, 일주일이나 뒤늦게 다뤘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의사결정 절차 그리고 관련 사회 갈등 문제 등을 북한 주민들이 잘 파악하는 것은 주민의 ‘알 권리’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적극 환영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국민들의 시위 문화에 대해 노동신문이 다루지 않은 내용들을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탄핵 결의 투표가 국회에서 불발되던 지난 7일 이후, 한국 국회가 있는 여의도는 거의 매일 저녁, 시민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여의도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국회의사당에 닿아 있는 '의사당대로'는 길이가 1.65킬로미터에 폭이 50미터 규모의 대로입니다. 지난 한 주간 저녁 시간이면 이 공간이 시민들로 빈틈이 없었는데요. 11일 노동신문 6면에 나오는 한국 국회의사당 앞 한밤의 집회 사진이 그대로 연출됩니다. 사람들은 예쁜 색깔의 빛을 내는 형광 막대기를 흔들고 함께 노래 부르며,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민주주의와 주권에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의 계엄 시도를 비판했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노동신문 보도가 말한 ‘참여연대’나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만이 아닙니다. 여의도 인근 지하철 이용 정보와 이동통신 데이터로 추계한 정보에 따르면 이날 여의도에 운집한 인원이 133만 명 가량이고, 이들 중 20~30대 여성 비중이 대략 30%가 넘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한 20대 청년도 집회에 참여했는데요, “부모님 세대가 이뤄낸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하며 혼자 국회 앞으로 찾아 갔습니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예쁜 장식을 단 형광 막대기를 흔들며 여의도를 찾아온 젊은 부모들도 많이 보입니다. 사실 형광 막대기의 대부분은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응원봉입니다. 공연장에서 노래에 맞춰 흔드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들을 촛불 대신 시위에 들고 나온 것이죠.
이런 분위기에 따라 집회 현장에서 고성능 확성기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분노에 찬 투쟁 구호나 투쟁가가 아니었습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90년대의 신나는 대중음악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최신 한류 음악을 부르며, 공연장 분위기를 방불케 합니다.
한국 3대 통신회사들이 시위 현장 부근에 이동 기지국을 26대나 증설했음에도 대규모 인파가 한 지역에 운집했기에 통신망에 일시적인 장애도 발생했습니다. 더 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 예상되는 14일 토요일엔 55대의 이동통신 기지국을 증설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참여 시민들은 각자 손전화로 현장 상황을 촬영하고 실시간 인터넷으로 보도하는 수십만 개의 개별 방송국이 될 겁니다. 이것이 한국 청년세대가 손전화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동통신은 북한 주민들도 흔히 활용하는데요. 북한도 손전화 사용이 일반화되자 2020년에 ‘이동통신법’을 제정했고 2023년 3월에 수정, 보충했습니다.
이 법의 35조는 ‘이동통신 단말기 이용에서 지켜야 할 요구사항’ 9가지를 나열했습니다. 컴퓨터와 손전화로 인터넷을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한국 같은 보통 나라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요구사항은 손전화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로 보입니다.
‘중요 행사와 회의에 손전화기를 가지고 참가할 수 없으며 금지된 지역 또는 건물 안에서 손전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손전화로 회의 내용을 기록, 녹음하거나, 중요 회의나 행사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거나, 효율적인 회의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그 자리에서 검색하기 위해서 손전화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가장 초보적인 손전화의 기능이지요. 북한 당국의 요구 사항은 이런 초보적인 기능도 제한합니다.
그 외에도 ‘비밀에 속하는 내용의 말’을 하지 말 것과 ‘불순 내용의 그림, 노래, 영화, 오락’을 열람 또는 시청하지 말라고 금합니다. 이 조항은 모호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법 집행자가 자의적으로 체포해 법을 남용할 여지를 줍니다. 손전화 사용에서 주민들에게 일상적인 공포를 가하게 되는 꼴입니다.
북한은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과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의 당사국이므로, 북한 주민들은 손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함께 '문화를 향유할 권리'도 보장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유엔의 핵심적 인권 규약 내용에 위배되는 국내법을 만들어 주민들의 기본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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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