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노동신문은 관련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지만, 이번 한 주간 한국은 좀 시끄럽습니다. 지난 3일 밤 10시 20분이 좀 지나며 한국의 윤석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계엄’이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특히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 또는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정부의 행정, 사법 기능의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즉 경찰 능력만으로 사회 질서 유지가 불가능할 때 군대를 동원해 혼란을 정리하는 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비상계엄은 과거 군사독재 시기에 있었고,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 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이 가장 최근의 계엄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은 극단적 무질서 상황은 아니었는데요, 따라서 지난 3일 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은 너무나 뜬금 없어서 한국의 전 국민에게는 물론 세계에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칫 1980년 이후 또 한번 비극의 상처를 역사에 남길 수 있었던 긴박한 밤이었는데요. 대통령의 계엄선포 후 약 30분이 지나 다수의 헬리콥터를 이용해 약 280명의 특수부대원들이 국회에 진입해 의회 기능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밤 11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국회로 모여 맨 몸으로 무장한 계엄군을 막았고 계엄군도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또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 사이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고 국회 회의장에서는 다음 날 새벽 1시가 조금 지나 법적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표결에 붙여져, 참석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계엄령이 해제됐습니다.
국회에 모여들었던 시민들은 이 소식에 환호하며 군 병력이 철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박수치며 일촉즉발의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을 기뻐했습니다. 중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맨주먹의 시민들 수백 여 명과 뒤엉켜 계엄 발표 직후부터 6시간 이상을 대립했지만 다친 사람 한 명 없이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의 위기상황에도 한국 경제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시장이 스스로 잘 작동하고 안정성을 찾아가고 있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경제 외적 요소에 크게 위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삼권분립인데요. 권력이 최고지도자 한 사람이나 하나의 정당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부와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 그리고 법률을 적용하는 사법부의 권한이 분리되어 상호 견제하는 체제를 말하고요. 따라서 대통령의 오판 하나로 나라가 위태로워질 상황에도 여러 축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패막을 설치해 둔 것이기 때문에,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위기에도 회복력을 갖고 정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힘이 있는데요. 바로 정보의 힘입니다. 국회 앞에 모인 수 백 명의 시민들은 각자 손전화를 높이 치켜들고 계엄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방송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인파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 특수부대의 총부리 앞에서 저항하는 사람들, 과격한 행동을 하는 시민들에게 ‘이러시면 다칩니다’라고 차분히 말하며 시민의 주먹을 몸으로 받으면서도 침착하게 시민을 보호하던 특수부대 군인들의 태도, 이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공개됐습니다.
즉 국민들의 성숙한 민주 시민의식이 그 혼란 상황에서도 중심을 바로 잡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한국 민주주의는 1980년대 이후 좌우 대립과 시민의식의 미성숙 시기를 거치며 여전히 덜컹거리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40-5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내며 국가 체제의 성숙과 시민의식의 성장이 함께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입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많은 흠결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류 역사가 존재한 이래 수 많은 실험과 경험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인류의 지혜가 응축된 제도입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한국에도 잘 정착을 했기에, 계엄 이후 윤 대통령의 거취 문제 등도 법적 절차 대로 극단적인 문제 없이 마무리되리라 한국 국민들은 믿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에서 주민들과 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최고지도자의 무모한 결정에 반발한 평양시민들 백 여 명이 길거리로 나와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전개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3대 세습으로 모든 권력을 한 곳에만 집중시키고, 어떤 기구의 견제나 균형도 없이 전체주의 독재체제로 국가를 이끌고 있기에, 국제사회가 불안한 심경으로 북한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