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제5차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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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나란히 손을 잡고 백두산 천지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은 마치 수십년 지기 친구인 듯 함께 백두산 정상을 산책하고 천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국 방북단의 일원으로 함께 북한을 방문한 가수 알리가 부르는 아리랑 가락이 천지에 울려 퍼지자 남북 대표단 모두는 어깨를 들썩이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랬습니다.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개최된 제5차 남북 정상회담은 과거 정상회담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순안 비행장에서부터 문 대통령 일행은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두 정상은 한 승용차에 동승하여 여명거리를 통과하는 카퍼레이드를 벌였으며, 19일에는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한국 국민들도 남북관계가 늘 이번 정상회담때와 같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출했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진정한 상생시대를 열어가려면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평양 공동선언은 교류협력, 군사적 긴장 해소 그리고 비핵화 등 세 가지 큰 의제에 대한 두 정상 간의 합의가 담겼습니다.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는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 예술 및 스포츠 교류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아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조기 재개를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도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활성화하기 위해 면회소를 다시 열고 영상 상봉도 최대한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철도 도로 연결과 경제협력은 유엔 대북제재의 해제를 전제하는 것으로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들을 취해야 제재가 해제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실 날이 많지 않은 고령자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북한이 진정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면 국군포로 문제나 납북자 문제에도 개방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하는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는 관행도 깨끗하게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핵문제와 관련해서 동창리의 미사일엔진 시험소와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이지만, 동창리 발사장은 북한 전역에 산재한 수많은 핵관련 시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영변의 핵시설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것이 미국이 종전선언 서명, 미북관계 개선, 제재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변의 핵시설을 그대로 운용하겠다는 말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자고 했지만, 여기에서 핵 위협이라는 것이 미국이 북한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 아직도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제거하고 전략 자산 전개나 대규모 훈련을 하지 않아야 자신들의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논리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핵국 대 핵국이라는 대등한 입장에서 조미(朝美) 간 핵군축 협상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며, 그것이 북한이 종래부터 주장해오던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구체적인 핵시설을 거명하면서 폐기를 약속한 것은 분명 핵해결을 위한 진전이지만, 아직도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가 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함을 나타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군사분야 합의서는 현재 한국에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군의 공중정찰 활동을 제약하는 비행금지구역, 등거리 등면적 원칙을 벗어나 지나치게 북한에게 유리하게 설정된 서해 평화수역 등에 합의한 것을 두고 찬반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 철수 문제도 그렇습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보다 서울까지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까운 상황에서 그리고 북한군의 감시초소가 한국군의 초소보다 두배 이상이나 많은 상황에서 양측 동수로 감시초소를 철수한다는 것이 과연 군사적으로 등가성을 가지느냐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당국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문제들은 단순한 우려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국민, 미국 국민, 미국 의회 등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호의와 친절보다는 지금부터 북한이 취해 나갈 조치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가진 것은 북한 뿐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 단순한 논리를 거부하고 이런 저런 이유들을 내세우고 시간을 끈다면 북한의 진정성은 다시 한번 세계여론의 도마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