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윤여정 아카데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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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의 한국 영화배우 윤여정이 한국 영화계를 다시 한번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윤여정은 지난 4월 11일 런던의 로열앨버트홀에서 개최된 제74회 영국 아카데미상(British Academy Film Awards)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수상자들은 화상으로 출연했습니다. 이어서 4월 25일 윤여정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로스엔젤레스 유니언스테이션으로 날아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영화계를 흥분시킨 경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윤여정이 연기한 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이 만든 영화로서 1980년대 미국 아칸소주로 이민을 간 한인 가정의 애환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잘 살아보겠다며 억척같이 노력하는 딸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간 할머니 역을 맡아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윤여정은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을 비롯하여 미국 배우조합상, 워싱턴 영화비평가협회상, 보스턴 영화비평가협회상, 플로리다 영화비평가상,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등 30여 가지의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영화인들은 윤여정이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아카데미상도 받을 것으로 예상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 2월 9일 봉준호 감독이 만든 한국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의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한 것은 한국 영화계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큰 경사였습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된 것도 처음이었고 네 개 부문 수상을 휩쓴 것은 더욱 처음이었으며,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수상한 것도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에 윤여정이 쟁쟁한 세계 여자 배우들을 제치고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한국 영화가 세계 속에 우뚝 섰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윤여정은 자수성가한 한국의 여배우입니다. 1947년생으로 서울에서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6년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결혼한 후 한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이혼한 경력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윤여정은 두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시급 2.75달러를 받으며 수퍼마켓의 계산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윤여정은 한국 영화계로 돌아와 왕성한 연기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윤여정이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는 ‘장희빈,’ ‘화녀,’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굳세어라 금순아,’ ‘하녀,’ ‘죽여주는 여자’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으며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무수한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윤여정은 수많은 영화 경력과 인생 경험을 쌓은 대스타답게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도 많은 재치를 발휘하여 세계 영화인들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4월 11일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소감을 화상으로 밝히면서 윤여정은 “고상한 척 하기로 소문난 영국사람들로부터 좋은 배우로 인정받아 특히 영광스럽다”고 말해 영국인들의 폭소를 자아냈고, 그러면서도 이틀전인 4월 9일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에 대한 애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는 자리에서는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랐던 마리아 바칼로바, 글렌 클로즈, 올리비아 콜맨,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을 치켜 세우면서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했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를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말미에는 두 아들을 언급하며 "내가 나가서 일을 하도록 만들어준 두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윤여정의 재치있는 농담과 겸손에 대해 영국의 로이터 통신, 일간지 인디펜던트, 미국의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등이 일제히 칭찬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윤여정은 재치가 넘치는 농담과 겸손으로 세계의 영화인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함으로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안았습니다. 언젠가는 남북한 영화들이 국제무대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남북이 합작한 영화들이 각종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