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문으로 시작된 북한의 대남 비방공세는 6월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행동 보류를 지시함에 따라 전격 종료되었습니다. 이 20일 동안 평양 정권은 한국 정부를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쏟아냈고 군사행동까지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세는 남북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과도하다는 비난까지 들으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했던 한국 정부를 좌절하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북핵 포기와 평화정착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한국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것입니다.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단체들이 날려 보내는 대북 전단을 문제삼은 것으로서,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본 척하고 부추기는 놈이 더 밉다”면서 한국 정부를 '놈'으로 불렀고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업지구 철거, 공동연락사무소 폐지, 군사합의 파기 등을 경고했습니다. 이어서 6월 9일 북한은 모든 남북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습니다. 6월 13일 담화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남조선 것들과 확실히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 등의 막말과 함께 대남 군사행동을 경고했습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될 것”이라는 예고도 했습니다. 6월 16일 실제로 북한은 한국이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 단장한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렸습니다.
6월 17일에는 노동당 장금철 통전부장의 담화문, 총참모부 담화문, 조선중앙통신의 논평 등 다섯 건의 비방을 쏟아내면서 대남 압박의 강도를 최고로 끌어 올렸습니다. 총참모부는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군부대 재배치, 비무장지대 경계초소의 군병력 투입, 서남해 포병부대의 전투준비 증강, 휴전선 일대 군사훈련 재개 등을 경고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한국 국방부가 ”북한이 도발하면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에 대해 “남조선 국방부가 겁먹은 똥개마냥 짖어댄다”, “입 건사를 잘못하면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등의 협박을 가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언행을 보면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전략목표들이 불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에게 있어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영향력을 한반도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70년 동안 추구해온 목표였고, 핵문제에 있어서는 약간의 양보를 하는 선에서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는 스몰딜(small deal)을 추구해왔으며, 북한의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대북제재를 완화 또는 해제하는 것은 당면한 최대 목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 여부를 제쳐둔 채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우리민족끼리’ 차원의 대북 경제협력을 제공한다면 이는 한미동맹 이완과 핵보유 기정사실화 그리고 대북제재 완화라고 하는 북한의 세 가지 목적 모두에 부합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23일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통해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를 지시한 것도 북한의 전략목표와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미국이 한반도 인근 해역에 세 개의 항모전단과 B-52 전략폭격기들을 전개한 것도 북한의 군사행동을 보류시킨 한 원인이겠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술한 세 가지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협상해야 할 상대국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하기 위해 이 정도에서 그친 것으로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대남 비방공세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으로 분석합니다. 또한 9.19 군사합의가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 남북이 모두 확성기 선전을 재개하는 경우 외부 소식의 차단을 원하는 북한에게 더욱 불리하다는 점 등도 북한이 군사합의 파기에 이르기 직전에 멈춘 또 다른 이유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대남 비방공세가 사전계산 하에서 예정된 순서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공세는 북한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대북제제를 해제시키고 한미동맹을 이완시켜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속내를 다시 한번 드러냈을 뿐, '핵없는 한반도'를 원하는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의 염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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