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제4차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과 북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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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지난 1월 8일 베이징으로 가서 시진핑 주석과 네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정상 간의 만남이 10개월 만에 네 번이나 있었다는 것은 파격적인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1949년 북중 수교 이후부터 1994년 사망할 때까지 중국과 10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이 기간은 양국이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이라는 ‘당 대 당’ 특수관계 겸 혈맹관계를 누리던 기간이었고, 김일성 주석은 50년 집권 동안 매 4-5년마다 한번씩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북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끈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동안에도 북중 관계는 안정적이었고,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 정상들과 10차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2011년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래 6년 동안 북중 간 정상회담이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 북중관계가 다소 후퇴했습니다. 즉, 한국과 중국 간의 경제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둘째는 미국과 중국이 지금처럼 대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대국굴기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미중 간 패권경쟁이 가열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양국은 협력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셋째, 시진핑 주석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숙청하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정권장악에 나선 북한의 젊은 새 지도자에 대해 좀 더 지켜보기를 원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거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시 주석이 2018년 이래 10개월동안 네 번이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것은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미중 간 패권경쟁이 가열되면서 신냉전이 격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대국굴기’의 미명 하에 팽창주의 대외기조를 고집하는 중국으로서는 일본, 호주, 인도 등 해양세력들과 연계하여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 및 북한과 더욱 밀착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적 제휴가 강화되고,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뒤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지원하는 이중플레이를 해온 것은 이런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펼친 평화공세와 정상외교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평화공세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한국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했고 한국, 중국, 미국 등과 도합 여덟 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자신의 외교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네 차례의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을 살펴본다면 2018년 3월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회담은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행사이자 6년간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 계기였을 것입니다. 6•12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7일 다롄서 열린 제2차 회담은 중조우호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곧 있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북한의 입장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인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6월 19일에 베이징 인민대회당서 열린 3차 회담은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중국에 통보하고 이후 핵협상 전략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인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지난 1월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 역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곧 있을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협상전략을 상의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북중 정상회담이 끝나면 늘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지지한다” 등의 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북한이 연거푸 핵실험을 실시하여 온 세계가 북한을 비난하고 있을 때에도 중국은 북한 핵실험에 반대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얘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은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다른 표현으로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미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등 미국의 핵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한반도에서 핵을 가진 것은 북한뿐이므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의 ‘북한 비핵화’ 또는 ‘북핵 폐기’와는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이야기도 듣기에는 평화로운 것이지만,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평화체제로 전환하자고 요구하는 배경은 한미동맹을 무력화시켜서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내고자 하는 대남전략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즉, 중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지한다는 것은 미중 간 세력경쟁을 의식하여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제4차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이 향후 핵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우려합니다. 현재 북한은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핵실험장 입구 폐쇄, 동창리 기지의 일부 시설에 대한 해체작업 착수 등 약간의 성의만 표시한 채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향후 핵협상에서 북한이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면, 세계가 바라는 북핵 폐기는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제3차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가 완강해진 것도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재확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실무회담을 중단했고, 결국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갖기로 한 실무회담이나 연말에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고위급 회담도 북한 측의 요구로 무산되거나 연기되었습니다. 미국의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취임한 것이 지난 8월이지만, 비건 대표는 아직 북한 측과 마주 앉아 보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지금 세계는 곧 있을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주장에 집착하고 중국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상황이라면, 이번에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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