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윤정희의 별세와 윤정희-백건우 부부 납북 미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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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국 영화의 레전드 윤정희 씨가 향년 79세로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는 알츠하이머 투병생활을 해오던 아내가 외동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장례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파리에서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졌습니다. 본명이 손미자인 윤정희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 재학 중인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의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에서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되어 은막에 데뷔한 이래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을 휩쓸면서 청춘스타로 활약했고 2010년까지 2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윤정희는 한창 이름을 날리던 1973년 홀연히 파리로 영화유학을 떠나 거기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윤정희는 백건우 씨의 아내이자 비서이고 매니저이자 팬이라는 ‘1인 4역’으로 남편의 음악생활을 헌신적으로 내조했고, 틈틈이 한국을 오가면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별세 소식을 들으면서 4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윤정희 백건우 부부 납북 미수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 씨 부부는 1976년 재불(在佛) 화가 이응노의 주례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몽마르트 언덕의 작은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는데, 이듬해인 1977년 7월 이 화백의 아내 박인경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습니다. 내용은 스위스 취리히의 ‘미하일 파블로비크’라는 부자가 자기 집에 백 씨를 초청하여 연주회를 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인경의 강권에 백건우 부부는 생후 5개월 딸 진희를 데리고 박인경과 함께 7월 29일 취리히에 도착하지만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파블로비크의 여비서라는 여자가 나와서 그의 양친이 사는 공산국가 유고의 자그레브에서 연주회를 해야 한다면서 유고행 비행기를 타라고 했습니다. 엉겁결에 도착한 자그레브 공항에는 선글라스를 낀 동양여성과 함께 북한의 조선민항 항공기가 덩그러니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어 박인경이 건네 준 주소를 들고 택시로 파블로비크의 양친이 산다는 별장으로 갔지만, 연주회가 열릴 분위기가 전혀 아닌데다 북한 공작원으로 보이는 남자와 맞닥뜨립니다. 백 씨는 곧바로 택시로 달려왔고 그 남자가 택시 손잡이를 잡고 멈추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뒤로 한 채 자그레브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갑니다. 이후 미 영사의 주선으로 묵게 된 호텔에서도 또 한번 무서운 순간을 맞이합니다. 7월 30일 새벽 6시 40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다른 방에 묵고 있던 미 영사에게 전화를 하자 미 영사는 낯선 동양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문 앞에 있으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국, 윤정희 가족은 미 영사의 도움으로 그날 오전 파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백건우 씨의 재빠른 판단과 미 영사의 도움으로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년 후인 1978년 1월 북한은 한국의 또 다른 국민 여배우 최은희 씨에게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여 홍콩 영화 출연을 미끼로 홍콩으로 오게 한 후 납치했고, 아내를 찾아 7월에 홍콩에 온 남편 신상옥 영화감독도 납치했습니다. 이후 최은희 부부는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미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8년간 북한에서 북한의 권력자가 원하는 영화들을 제작해야 했습니다.

백건우 부부 납북 미수 사건은 당시 김성우 한국일보 파리 특파원, 장덕상 중앙일보 특파원, 일본 NHK 취재팀 등을 통해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김성우 특파원은 ‘파블로비크’가 산다는 취리히로 가서 주소와 사람을 확인했지만 그런 주소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자그레브 주재 북한대사가 유고 당국에 출두하여 유괴 공작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대화록이 현재 크로아티아 정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NHK 취재팀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1977년 8월 14일 자그레브 공항에 있었던 동양 여자가 북한 통상대표부에 근무하는 북한인이었다고 보도했고, 북한 귀순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자그레브 별장에 공작원들이 매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윤정희, 백건우 가족을 구출해준 미국 영사는 1936년생 위스콘신 출신 외교관, 리처드 크리스텐슨 씨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북한에게는 ‘공작국가’라는 매우 나쁜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온 국민이 사랑했던 윤정희 씨를 떠나보내면서 홀로 남은 백건우 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