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한국 국민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존 케이 싱글러브(John K. Singlaub) 장군이 향년 100세로 타계했습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21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고 1943년 소위로 임관한 후에는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 소속으로 제2차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나치점령 하에 있던 프랑스에 잠입하여 레지스탕스들을 훈련시켰고, 태평양 전선에선 일본군에 억류된 연합군 포로를 구출하는 특수작전을 펼쳤습니다.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이후에는 중국 담당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1953년 철의 삼각지대, 김화지구 전투에서 대대장으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그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여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호치민 루트를 통해 남침하는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중남미와 아프간에서도 특수작전들을 수행했습니다. 특수작전에는 헬기가 많이 사용되는데, 싱글러브 장군은 준장이던 1971년에 50세의 나이에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몸소 조종술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싱글러브 장군은 미군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특수전 전사’로 불렸습니다. 이후 미 특수전사령부는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특수부대원에게 수여하는 ‘존싱글러브상’을 제정했는데 2016년 싱글러브 장군 본인이 첫 수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싱글러브 장군은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으로서 후배 군인들의 귀감이 되었지만, 특히 한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국인이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977년 초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은 32,000명 규모였던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당시 한국 정부와 국민으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국민은 북한군의 도발로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으로 살던 시기였습니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기도를 비롯하여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대한항공 YS-11기 남북, 소흑산도 간첩선 침투, 휴전선 남침땅굴 발견 등으로 긴장이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1975년 6월 30일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이 유엔군의 헨더슨 소령을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헨더슨 소령은 심한 후유증을 앓다가 명예 전역을 했습니다. 북한군은 1976년 8월 18일에 역시 판문점에서 유엔군 초소들 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던 유엔군측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와 베럿(Mark T. Barret) 소위를 도끼로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1977년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함께 미군철수에 반대해 주었던 존 베시(John W. Vessey) 주한미군 사령관 아래에서 참모장으로 근무하던 싱글러브 미 육군 소장은 카터 대통령의 미군철수 계획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이 일로 그는 백악관으로 호출되었지만 그는 대통령 앞에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미 하원 군사소위원회에 출석해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싱글러브 장군은 1977년 3월 21일자로 보직 해임되었고 다음해 6월 1일 예편되었습니다. 그는 보직 해임 상태에서도 1977년 5월 29일자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군의 전쟁준비 정보를 종합한 결과 카터의 대통령의 계획대로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역 후 싱글러브 장군은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승진을 계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늘 같은 대답을 반복했습니다. “군인으로서 신념에 따라 행동했으므로 아무런 후회도 없다. 옳지 않은 정책을 지지해 한두 계급 더 진급했다면 그것이 후회할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한결같은 답변이었습니다. 물론 카터 대통령의 미군철수 계획도 백지화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자신의 직을 걸고 한국의 안보를 걱정해준 싱글러브 장군은 한국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고, 2016년에는 한미동맹을 지킨 공로로 ‘제4회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싱글러브 장군의 별세 소식에 그를 아는 많은 전·현직 한국군 장성들도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으며, 황기철 국가보훈처장도 애도를 표하고 조전을 보냈습니다. 삼가 싱글러브 장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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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