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카자흐스탄의 핵실험 반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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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핵실험이든 지하 핵실험이든 모든 핵실험은 방사능 오염, 지형 파괴, 해양 오염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며 그 여파는 자국 국민은 물론 인근 나라에도 미칩니다. 그래서 오늘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의 핵실험을 중단시키기 위해 투쟁했던 역사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핵실험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카자흐스탄은 272만 ㎢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이며 북한의 22배입니다. 인구는 1천 9백만 명으로 북한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협소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 재앙에 대해 걱정해보고자 합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사이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써 191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의 영토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소련은 카자흐스탄에서 많은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1945년 8월 제2차 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는 것을 본 소련의 스탈린은 조속히 원폭을 개발하라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1949년 소련 군부는 첫 핵실험 준비를 마치면서 비밀리에 카자흐스탄 동북부의 세미팔라틴스크(Semipalatinsk) 지역을 실험 장소로 결정했습니다. 카자흐인들은 볼셰비키들에게 정복당하여 소련의 일부가 되었을 때 절망했지만, 이후 이 지역에서 실시된 핵실험으로 다시 한번 절망합니다.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언덕과 나지막한 산들이 펼쳐지고 아름다운 강들이 흐르는 곳으로 많은 작가, 시인 그리고 음악인들이 이 땅을 소재로 예술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카자흐인들이 신성한 땅으로 여겨왔습니다.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세미팔라틴스크 시는 12만 명의 다양한 종족들이 사는 상업 도시인데, 소련은 이 도시로부터 불과 120km 떨어진 곳에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이후 450회에 이르는 지상 및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1949년 8월 29일, 주민들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며 담장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박살나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하늘을 뒤덮은 버섯구름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후 주민들은 영문 모르는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여성들은 불임증을 앓았고 태아들은 기형이거나 사산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자살율도 급증했습니다. 모스크바 정부와 소련 군부가 굳게 입을 다문 가운데 의사들은 방사능으로 인한 암 발병을 알면서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떠한 응답도 없었습니다.

핵실험을 중단하라는 카자흐인들의 외침은 198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시대에 가서야 응답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핵실험 자료들이 공개되었고, 카자흐스탄 지방정부가 모스크바 정부에게 핵실험 중지를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소련은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이 혼란 속에 소련이 강점하고 있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몰도바, 우즈베키스탄 등이 차례로 독립을 쟁취합니다. 카자흐스탄 지방정부는 1991년 8월 29일 중앙정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핵실험장 폐쇄를 선포했습니다.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이 개장 42년 만에 폐쇄된 것입니다. 4개월 후인 1991년 12월 16일 카자흐스탄은 독립을 얻습니다. 12월 25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임했고 1991년 12월 26일부로 소련연방은 해체되었습니다. 핵실험 중단을 위한 카자흐인들의 오랜 투쟁이 소련연방의 해체와 함께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독립 후 카자흐스탄은 자국에 남아있던 핵무기와 핵시설을 반납 또는 폐기하는 비핵화 과정을 거쳤으며,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은 세계적인 핵실험 금지 운동을 위한 상징으로 부상했습니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회의들이 이곳에 유치되었고, 세미팔라틴스크의 핵실험장은 핵실험 의심 상황을 조사하는 시뮬레이션 학습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은 1996년에 결성되어 185개국이 서명하고 170개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입니다.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핵시설을 가진 44개국 모두가 비준해야 발효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36개국이 비준하여 아직 법적으로 미발효 상태이지만, 모든 서명국들은 핵실험이 인류에 대한 죄악이라는 사실에 공감하여 준수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기구(CTBTO)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핵실험 관측소 300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조약을 외면하고 최근까지 핵실험을 강행한 국가는 북한뿐입니다. 북한은 2006년에서 2017년까지 여섯 차례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금년 1월 19일 북한은 정치국회의를 통해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의 재가동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즉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