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행동이 갈수록 잔혹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 유치원, 병원 등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제네바협정이 사용을 금지한 클러스트탄(cluster bomb)과 열압력탄(thermobaric bomb)까지 사용하고 있어 곳곳에 처참한 광경들이 목도되고 있습니다. ‘집속탄’으로 불리는 클러스터탄은 폭발할 때 수백 개의 자탄들을 사방으로 흩뿌려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폭탄입니다. ‘진공폭탄’으로 불리는 열압력탄은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때 발생하는 압력파로 인해 은폐물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도 장기가 파열되어 죽거나 다칩니다. 그래서 국제형사재판소가 전쟁범죄 조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국제 핵비확산 체제를 흔드는 언행을 보이고 있어 핵재앙 가능성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구축된 핵비확산 체제는 1970년에 발효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중심으로 많은 조약과 기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체제의 헌법에 해당하는 NPT는 1967년까지 핵을 보유했던 5개국 즉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에게만 핵보유 권한을 인정하고 다른 모든 나라들의 핵보유를 금지한 조약입니다. 얼핏 보면 핵보유국과 비핵국으로 양분하는 불평등 조약이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가입하여 준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핵보유국이 많아지면 핵전쟁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전체 인류의 안전을 위해 핵확산을 막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핵보유국들 간에는 과도한 핵경쟁을 통제하는 핵군비통제 조약들이 있고, 1996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도 체결되었습니다. 비핵국이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감시와 검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핵보유국들이 비핵국이 핵공격을 받을 시 보호해주기로 약속한 적극적 안정보장(Positive Security Assurance)이나 핵국들이 비핵국에게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은 비핵국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약속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핵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핵응징을 가하겠다는 약속을 동맹국에게 개별적으로 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핵우산입니다. 이런 장치들이 한데 어울려 거대한 핵비확산 체제를 구성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NPT 체제를 흔드는 위험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면 전례없이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핵사용 불사를 암시했고 2월 27일에는 핵무기를 운용하는 전략로켓군의 경계태세를 격상시켰습니다. 3월 2일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이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파멸적인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해 세계를 긴장시켰고, 이틀 후인 4일에는 러시아군이 원전 6기가 가동 중인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단지에 포격을 가해 점령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원전들이 폭파되었다면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시보다 10배나 많은 방사능이 유출되었을 것이라면 가슴을 쓸어 내렸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가 부당하게 외부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러시아가 작은 이웃국을 침공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핵강국인 러시아가 위험한 핵행보를 보인다면 적극적 안전보장이나 소극적 안정보장 약속은 물거품이 될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을 존중하기로 합의한 1994년 부다페스트각서도 사문화되는 것입니다. 핵비확산 질서와 각종 합의들을 믿고 비핵을 유지해온 많은 나라들이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며, 너도 나도 살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남수단 등 다섯 개 나라뿐입니다. 특히 북한은 모든 핵관련 조약을 거부한 채 최근까지 핵실험을 강행하여 NPT 체제를 위협해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NPT 체제를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핵강국 러시아가 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핵비확산 체제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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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