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발 ‘평화’의 바람이 무척 거셉니다.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제안한 대화를 한국정부가 수용함에 따라 남북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더니만 남북 간 특사교환이 이루어지고 4월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는 합의까지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월 5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고는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북 정상회담을 원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수용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제는 미북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핵악몽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한국 국민에게는 핵해결의 기대감을 안겨 준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는 우려감도 팽배한 것이 사실입니다. 평화공세의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하더라도, 북한이 쏟아낸 약속들에 내포된 함정을 간파하고 핵폐기를 위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넘치도록 많습니다. 북한은 여섯 번의 핵합의를 모조리 파기한 찬란한(?) 전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0년 비핵화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및 10․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이 요란한 환호 속에 성사되었지만, ‘대화 따로, 핵개발 따로’라는 북한의 이중전략에 의해 유린되고 폐기되었습니다. 북한이 이번에도 대화를 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핵미사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에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천명했고 이듬해에는 핵보유법이라고 불리는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에 대한 법‘을 제정했으며, 여태껏 “정의의 핵보검을 가져야 한다”고 선전해왔습니다. 선전선동을 중시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하루아침에 핵포기로 선회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2017년 10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보유 고수‘와 ’국제제재 극복‘을 전략목표로 채택한 직후에 대남 대화공세를 주 내용으로 하는 신년사가 발표되었다는 사실, 북한은 1990년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및 미국과 대화국면을 열었듯 이번에도 국제제재가 북한을 질식시키고 북한정권이 어려움에 처한 시점에 평화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 한국의 특사들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언하는 중에도 북한의 관영 매체들이 여전히 ’핵보유의 정당성‘을 보도하고 있다는 점 등도 핵폐기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유들입니다.
북한의 약속 중에 함정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4월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서로를 ‘멍청한 노인네’와 ‘꼬마 깡패’로 부르던 북한과 미국의 두 지도자가 조만간 만날지도 모르지만, 북한이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한 것은 고무줄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한미 연합훈련,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미국의 적대시 정책 등 북한이 ‘위협’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은 무지기수로 많습니다. 북한이 이번에도 진정한 핵폐기가 아닌 시간 벌기와 대북제재의 약화나 균열을 노리고 있다면 핵해결의 전제조건으로 연합훈련 중단, 동맹 해체, 미군철수, 미북 수교, 평화협정 등 수용할 수 없는 요구들을 쏟아내면서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핵대화에서 북한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핵폐기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북한이 이번에는 정말로 핵을 폐기하고 함께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큽니다. 북한이 이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향후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를 중심적 의제로 받아들여야 하고,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연연하여 무한정 평양정권의 장단에 춤출 것이라는 기대는 깨끗이 버려야 하며, 북핵이 폐기되는 순간까지 확고한 억제체제와 함께 대북압박을 계속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와 어중간한 타협을 시도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이나 핵동결만을 약속하면서 큰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한국 국민은 그러한 타협이 한국에 대한 안보위협을 불식시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중적·기만적 용도로 사용해온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도 더 이상 해서는 안 되고, ‘북핵 폐기’에 초점을 맞추어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핵과 재래무기는 대남용이 아니다”라는 선전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한국 국민은 이것이 한미동맹을 이간시키고 한국의 국론분열을 위한 선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폐기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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