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미국의 제5차 핵태세검토서(NPR)와 ‘핵 선제불사용’ 원칙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동해상에서 합동 지·해·공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7월 5일 동해안에서 열린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에서 한국군 탄도미사일 현무-2A(왼쪽)와 주한미군 에이태큼스(ATACMS)가 동시 발사되고 있는 모습.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동해상에서 합동 지·해·공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7월 5일 동해안에서 열린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에서 한국군 탄도미사일 현무-2A(왼쪽)와 주한미군 에이태큼스(ATACMS)가 동시 발사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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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가 핵태세검토서(NPR) 발행을 앞두고 요약본을 먼저 의회에 보고했습니다. 핵태세검토서란 핵정책과 핵전략의 골간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으로서 미국 정부가 발표하는 중요한 국가전략서 중의 하나입니다. 핵태세검토서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여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하면 제5차 핵태세검토서가 됩니다. 3월 30일 월렌더(Celeste Wallander) 국방차관보가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보고한 내용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핵태세검토서에 ‘핵 선제불사용(NFU)’ 원칙, 즉 “상대가 먼저 핵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미국도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포함되지 않고 대신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서는 핵사용을 검토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오랜 공약인 핵 선제불사용 원칙을 핵태세검토서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하던 시절부터 세계의 핵평화를 위해 미국이 솔선수범하여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부통령이었던 2017년 1월 11일 카네기평화재단 연설에서 “나와 오바마 대통령은 핵사용은 상대의 핵사용에 대한 억제 또는 응징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단일 목적 원칙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이 기조는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발행한 제3차 NPR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동맹국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2010년 당시는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이 약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즉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더라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미국이 핵우산을 작동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핵태세검토서 발표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핵 선제불사용 원칙의 대상에서 북한은 제외된다고 통보하고 이를 핵태세검토서에 포함시켰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와서는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이 격화되었습니다. 러시아가 1987년 미∙소 중거리핵폐기조약(INFT)에서 폐기하기로 합의했던 범주의 신형 핵무기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이 조약을 폐기했고, 이후 전술핵무기 개발경쟁이 재개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제4차 핵태세검토서에서는 핵 선제불사용 원칙이 삭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핵안보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단일 목적’ 및 ‘핵 선제불사용’ 원칙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5차 핵태세검토서에 이 원칙이 다시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당연히,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핵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가 핵사용 및 화생무기 사용 가능성을 흘리고 있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탄급 화성-17형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 재개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정황이 포착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사태들을 중시하고 동맹국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약속했던 핵 선제불사용 원칙과 단일 목적 원칙을 내려놓고 대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핵을 사용할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즉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중대한 도발에 대해서도 미국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기존 핵질서를 흔들면서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강행하는 나라들을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부르면서 ‘국제질서의 이단자’로 간주합니다. 미국은 세계 핵질서의 관리자로서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을 줄이기를 원해왔지만, 불량국가들이 여기에 부응해주지 않고 자신들만의 논리에 갇혀 위험한 핵행보를 계속한다면, 핵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특히 불량국가의 인근에 있는 국가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이 ‘공화국 전략무력의 핵심 타격수단’이라고 칭송하는 핵무기가 세계평화와 핵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