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판문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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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판문점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계는 한치의 착오도 없이 돌아가고 있으며 계절의 바뀜도 언제나 정확하여 올해도 예외 없이 봄이 돌아오고 있으며,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분단의 상징 판문점의 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남과 북이 판문점 남측 구역에 있는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남북 간에는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들이 열리고 있으며, 한국정부 역시 회담장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판문점은 원래 널빤지를 깔아놓은 문이 있는 마을, 즉 ‘널문리’라는 지명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6.25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1개월 그리고 휴전협상이 시작된 지 2년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서명됨으로써 판문점은 일약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명이 되었습니다. 도합 765회의 회담을 거친 후에 서명된 정전협정으로 248km의 휴전선, 즉 군사분계선(MDL)이 확정되고 전쟁의 포화는 멎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km 떨어진 곳에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그어졌으며, 그 사이 폭 4km의 지역은 비무장지대(DMZ)가 되었습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판문점 일대에 동서 800m 그리고 남북 400m의 지대를 공동경비구역(JSA)로 정하고 그 안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의 건물들을 건립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의 남측 지역에 대한 경비는 유엔군사령부에서 맡다가 2004년 11월부터 한국군이 맡고 있습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 건물에는 스웨덴,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4개국의 감독관들이 근무했지만, 1991년에는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의 붕괴와 함께 폴란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하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는 등 격변을 거치면서 북한은 1995년 북한측 중립국이었던 폴란드와 체코를 추방했습니다.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만 남아있습니다. 한동안은 유엔군, 한국군 그리고 북한군이 공동경비구역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고 남과 북의 병사들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거나 담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인솔하던 미군 장교를 무참이 살해하는 이른바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경계선에 높이 15㎝, 폭 50㎝의 콘크리트 군사분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남북 병사들 간 왕래나 사적 대화는 일체 중단되었습니다.

그래도 판문점은 대화와 교류의 장이었습니다. 그 동안 숱한 남북 간 회담이 여기에서 열렸고, 이산가족들도 이 지역을 통과하여 남북을 오가며 상봉했으며, 1998년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1000마리를 끌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판문점은 귀순자들의 탈출로이기도 했습니다. 1959년에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지국 기자 이동준이 판문점을 통해 탈출했는데, 그는 제96차 군사정전위원회 취재중 유엔군사령부 사무실로 가서 귀순 의사를 밝힌 후 미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식사 운반원으로 가장해 탈출했습니다. 1967년 3월 22일에는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이 제242차 군정위 취재를 하다가 유엔군 대표인 밴 클러프트 준장의 차량에 뛰어올라 총격전 속에 남한으로 탈출했습니다. 1981년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체코군의 로버트 오자크 일병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와 미국으로 망명했고, 1984년에는 소련 관광객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출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1989년에는 북측 군정위 소속 중국군 소령 부부가 천안문 사건에 환멸을 느끼고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98년에는 북한군 변용관 상위가 남측으로 넘어왔고, 2007년에는 북한군 병사가 공동경비구역 측면의 철조망 아래 땅을 파고 탈출했으며, 최근인 지난 2017년 11월 13일에는 북한군 하전사 오청성이 탈출하면서 북한군 추격조의 사격으로 온몸에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병사는 대대적인 수술을 받고 현재 건강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이제 판문점에서는 4월 27일 또 한번의 세계적 이목을 끌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이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정상회담이 적폐로 누적되어온 북한 문제들을 청산하고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여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의 문을 활짝 연다면, 올해 판문점의 봄은 유난히 따뜻할 것입니다. 반대로 북한이 또 한번의 시간벌기용 기만극을 펼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 것으로 결말이 난다면, 한국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있어 2018년 판문점의 봄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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