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6월12일 싱가폴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습니다. 그로부터 아홉 시간 후인 25일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문을 통해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다”며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정된 정상회담을 파기하지 말 것을 요청하면서 몸을 낮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담을 원래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신속하게 화답했습니다. 이렇듯 미국과 북한 간에 기싸움이 벌어지면서 미북 정상회담은 혼미 속에서 반전과 재반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혼선을 빚은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주된 이유는 합의문에 담길 핵심 의제인 북핵폐기의 강도, 방법, 속도 등에 있어 양국이 사전조율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북한의 핵폐기 진정성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증폭되었기 때문입니다. 5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이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과 두번 째로 회동한 이후 북한은 갑자기 공세적 태도를 취하면서 한미 공군의 연합훈련과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책을 출판한 것을 문제삼아 5월 16일로 예정되었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이어서 5월 22일에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참관할 외국기자단에서 한국 언론인들을 제외했다가 뒤늦게 합류시켰으며, 미국과 약속한 싱가폴 실무회담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맥스선더 훈련은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온 한미 공군의 연합훈련이며, 북한은 이를 인지한 상태에서 남북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지만, 그 다음날 갑자기 이 훈련을 시비하고 나선 것입니다.
미북 정상회담을 혼선 속에 빠뜨린 두 번째 이유는 미국과 북한이 주고 받은 인신공격적·적대적 메시지였습니다. 미국의 볼턴 안보보좌관과 팬스 부통령이 신속한 핵폐기를 위해 리비아식 모델을 거론한데 대해, 5월 16일 북한의 김계관 제1부상이 볼턴 안보보좌관에 대해 그리고 24일 최선희 부상이 팬스 부통령을 향해 인신공격성 담화문을 쏟아낸 것입니다. 담화문에서 김계관 제1부상은 “우리는 처참한 말로를 겪은 리비아와는 다르다”면서 볼턴 보좌관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고,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습니다. 최선희 부상은 5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문에서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팬스 부통령이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대북 군사적 선택이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대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팬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도 했고,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미국의 결심과 처신에 달려있다”면서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도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무시하고 계속 불법 무도하게 나온다면 정상회담을 재고려하는 문제를 최고 지도부에게 제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최선희 부상의 담화문이 나온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습니다. 통상적이라면 북한은 더욱 강경한 메시지로 응수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곧 바로 김계관 제1부상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온건한 메시지를 내보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정상회담을 원래대로 추진하겠다고 화답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에 긴급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즉, 북측이 남측에게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중재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듯 미북 정상회담이 혼미 속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어쨌든 미북 간 감정싸움이 이 정도로 마감되고 양국이 다시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완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은 많습니다. 어떤 합의를 할 것인가, 합의사항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이행할 것인가, 이행여부를 어떻게 검정할 것인가 등 적어도 세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당장 합의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말했듯 북한이 진정 평화의 새 역사를 열어나가기를 원한다면 이번엔 북한 스스로가 결단해야 합니다. 과거 여섯 번에 걸쳐 핵합의를 파기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에 합의해야 하며, 신속한 이행과 확실한 검정을 수용하는 내용들을 한 번의 합의에 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일괄합의이고, 그것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며, 국제사회는 반대급부로 모든 나라와의 관계 정상화와 경제지원을 제공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북한이 이것을 거부하고 기존의 ‘단계별 합의 및 매 단계마다의 동시 보상”을 고집한다면, 또는 이번에도 “대등한 핵보유국으로서의 핵군축”을 운운하며 일정한 핵능력을 유지하기를 고집하거나 완전한 비핵화 합의 후 이행이나 검정 단계에서 시간을 끌거나 합의를 뒤집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려 한다면, 국제사회의 신뢰는 물 건너갈 것이며 평화와 번영의 기회도 소멸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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