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판문점에서 美·北 간 ‘깜짝’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으로 가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남으로써 南·北·美 세 정상이 분단과 전쟁의 상징인 장소에서 회동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최전방 미군기지인 캠프 보나파스를 방문하여 장병들을 위로했고, 이어서 군사분계선에서 25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울렛 초소에 올라 멀리 보이는 개성시를 배경으로 장병들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캠프 보나파스는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때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던 미군 장교의 이름을 딴 부대이며, 오울렛 초소는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에서 내려온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두 정상은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듯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자유의집에서 53분간 사실상의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즉석 회견에서 미국과 북한이 곧 실무급 핵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합의가 사실이라면 6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답보상태에 머물던 핵대화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것이어서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 참여하지 않고 곧바로 돌아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북한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에 있다는 점을 연신 강조하면서도 “속도보다는 좋은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일괄타결·빅딜’ 입장을 재강조했으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맡을 것이라고 했고, 제재완화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에게 핵대화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미국이 새로운 협상자세로 나와야 한다,” “협상자를 바꿔야 한다”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와야 한다” 등의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협상자를 바꾸라는 것은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안보보좌관 등을 앞장세우지 말라는 것이었고,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단계적 동시행동’ 방식을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단계적으로 합의하고 매 합의마다 구체적 보상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미국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약속하는 빅딜 방식, 즉 일괄타결 방식을 주장해왔습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셈법과 협상자를 바꾸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며, 이에 따라 백악관에서의 볼턴 안보보좌관의 역할은 그대로일 것이며, 폼페이오 장관이 실무회담을 지휘하고 비건 대표가 협상팀을 이끄는 것이나 므누신 재무장관이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체제는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북한이 조건으로 내건 것들을 모두 거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백악관을 방문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후 일괄타결하는 행사를 미국에서 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평양당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언론들이 말하듯 6•25 전쟁의 당사국인 세 나라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것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핵문제에 있어서는 또 한번의 시작을 의미할 뿐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판문점 회동이 북핵 해결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북한이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내려놓고 ‘착한 나라’로 변신하는 시작이었음이 판명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북한이 핵능력의 일부만을 내주면서 안보보상과 경제보상을 받아가는 ‘가짜 비핵화’로 귀결된다면, 역사는 판문점 회동을 결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이후 평양정권의 대응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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