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의 지원 유세 도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거물 지도자의 죽음에 일본 곳곳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런 일이 치안 모범국인 일본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나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본 보수세력의 심장’으로 불렸던 지도자였고 총리직 사임 이후에도 우익세력의 대부였다는 점에서 각국은 아베 서거 이후 일본의 대외기조와 동북아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12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보수 정당들이 압승을 거둔 것을 보면 그의 사망이 일본 국내정치에 이미 엄청난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1954년 도쿄에서 출생한 아베는 외증조부 사토 에이사쿠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를 지냈고 조부 아베 칸이 중의원을 그리고 부친 아베 신타로가 외무상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아베는 1991년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993년부터 10선 중의원을 했고, 2000년 내각관방 부장관, 2003년 자민당 간사장 등을 거쳐 2006년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등극했습니다. 이후 선거 패배로 사임함으로써 그의 제1차 총리 재임은 일찍 마감되지만, 2012년 다시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어 2020년 궤양성 대장염으로 총리직을 사임하기까지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게 됩니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성장 정책을 펼치면서 2013년과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아베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우경화를 주도하여 미일동맹 강화, 중국 팽창주의 및 북핵에 대한 강력한 대응 등을 주도했습니다. 아베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시켰고, 내각의 평화헌법 재해석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선포하여 일본 자위대의 활동영역을 확대했으며, 일본의 재무장을 향해 강력한 국방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재개, 우익 역사교과서 제정 등을 통한 ‘전후 청산’을 시도하여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아베는 ‘일본 보수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의 우경화 기조는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그대로 승계되어 왔습니다.
아베 총리의 사망 이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지만, 재임기간 동안 미일동맹을 중시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 동참했던 아베인지라 미국의 상실감은 특히 큰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진정한 미국의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주미 일본대사관을 찾아 조문하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아베 총리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그리고는 백악관을 비롯한 모든 공공건물과 군 기지 및 해군 함정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습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깊은 애도를 표하고 주한일본문화원에서 조문했습니다. 정부조문단도 파견할 예정입니다. 한미일 안보공조 복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윤 대통령은 취임 후 한일관계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우리 양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종군위안부, 강제 징용, 독도 등 미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같은 자유민주주의 해양세력인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겠다는 복안을 내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 아무런 메시지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과 북한 사이에도 그동안 관계개선 노력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 십수명의 일본인을 북한으로 납치하여 일본어 교사나 공작원으로 훈련시켰는데, 1977년 중학교 1학년 때 하굣길에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때문에 납치문제의 타결은 북일관계 개선의 관건이었으며, 북한은 일본의 경제지원을 원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방북하여 납치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생존 납북자 일부를 귀국시키기도 했지만, 북한이 충분한 납치자 정보를 확인해주지 않고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함에 따라 관계개선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은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고 일본은 대북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던 2014년 스톡홀름 합의 이후에도 반복되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대북 강경론자였지만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이 연달아 일본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미사일을 쏘는 중에도 대화를 원했고, 외무성에 북한을 전담하는 동북아 2과를 신설하는 등 성의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북한이 핵무력 증강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북핵과 미사일은 북한의 모든 대외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베 총리의 별세에 대해서도 북한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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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