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 3개국을 순방하고 지난 9월 6일 공군 1호기 편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방에서 특이한 일정이 하나 있었는데, 미안마를 방문한 9월 4일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를 참배한 것입니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는 아웅산 묘역이 있는데, 이곳은 영국에 저항하여 독립투쟁을 벌였던 이 나라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유해가 모셔진 곳입니다. 이곳에는 1983년 10월 9일 당시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로 숨진 한국의 고위 인사들을 추모하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참배한 것이 바로 이 추모비였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 5개국 순방을 시작하면서 첫 방문국인 미얀마에 도착했고, 당일 아웅산 묘역에 참배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관들과 수행원들이 먼저 아웅산 묘역에 도착하여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굉음과 함께 미리 설치된 폭탄이 터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날 전두환 대통령은 현장 도착이 30분 정도 지연되었고 이를 통보받은 수행원들은 기다리는 동안 예행연습을 한번 더 하기로 하고 애국가를 연주했습니다. 테러범들은 애국가 연주를 듣고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오해하여 폭탄 스위치를 작동시켰습니다. 엄숙해야 할 대통령의 공식 행사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현장은 피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때 사망한 인사는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이계철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 김재익, 대통령실 경제수석,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부 차관, 강인희 농림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학기술부 차관,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등입니다. 대한민국의 장차관급 고위 인사들이 졸지에 횡사한 것입니다. 현장에 일찍 도착하지 않았기에 목숨을 건진 전두환 대통령은 공식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했습니다.
당연히 이 사건은 북한이 벌인 대형 대남테러 사건으로 역사에 남아 있지만, 사건 이후에 벌어진 일들도 끔찍했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사건 당시 미얀마 경찰은 미얀마 민간인들의 신고를 받고 도주하는 용의자 3명을 추적했는데, 한 명은 사살했고 두 명을 교전 끝에 체포했습니다. 모두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군인들이었습니다. 사살된 자는 신상철 상위였고, 체포된 자는 김진수 소좌와 강민철 상위였습니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국가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북한이 모든 미얀마인들이 성소로 여기는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 격노했습니다. 미얀마 정부는 11월 4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11월 6일자로 북한과 국교를 단절하고 국가승인까지 취소해 버렸습니다. 생존자 두 명은 미얀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고 김진수는 1984년에 사형에 처해졌으며,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형집행이 유보된 채 미얀마의 악명높은 정치범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후 북한이 범행을 부인하는 바람에 강민철은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사건발생 15년만인 1998년 한국 정부의 인사가 강민철을 면담했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잘 알고 있으며 풀려나서 한국에서 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수감생활을 한 강민철은 간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2008년 5월 18일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195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서 정찰총국에서 공작훈련을 받고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아 미얀마에 잠입했던 북한의 젊은이 강민철은 28세에 타국에서 체포되어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25년 만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웅산 테러 이후 한국 정부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비상국무회의를 열었습니다. 장교단 일부가 동일한 보복작전을 위한 ‘벌초계획’이라는 작전을 수립하는 동안 휴전선 지역의 일부 육군부대들이 완전무장 상태에서 명령을 기다렸고 미국도 전투 준비 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 3을 발령하고 7함대 소속 군함들과 조기경보기를 한반도로 급파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끝내 이 계획을 재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는 10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한국의 고위 공직자 17명은 그렇게 하여 이승을 떠나갔습니다. 물론, 북한의 대남 테러는 아웅산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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