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순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서 9월 10일은 추석 명절이었습니다. 4일 동안의 연휴를 맞이하여 2천만 명에 가까운 민족 대이동이 벌어졌고 고속도로들은 1백만 대가 넘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영국에서는 70년간 존경받는 국왕으로 재위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향년 96세로 서거하여,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에게도 9월 9일은 인민정권 창건 74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9·9절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 광명성절,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4월 25일 인민군 창건일 등과 함께 북한의 주요 명절입니다. 해서 북한 각지에서 기념행사들이 열렸지만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열병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시기에 핵문제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핵 없는 한반도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가는 법령을 제정하여 또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 9월 8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는 ‘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했습니다. 즉 2013년에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북한판 핵태세검토서’를 제정한 것이며, 그 다음날인 9월 9일 정권창건 기념일에 맞추어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해당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전문과 1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의 제1조는 핵무력을 국가방위력의 중추로 정의했고, 제3조는 핵무력 지휘통제권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제4조는 핵을 운용하는 군인들에 대한 내용으로 핵사용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제5조는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에게 핵위협이나 핵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습니다. 제6조는 핵사용을 위한 조건들을 명시했습니다.
사실 3조, 5조, 10조 등은 2013년 법에 있던 내용을 반복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3, 4, 5, 6조가 위험한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제6조는 추가된 내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1인에게 핵사용 결정권을 준 3, 4조는 고위직 여러 명이 각자의 암호를 입력해야만 핵발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강대국들의 체제와는 달리 한 사람이 마음대로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제5조는 사실상 한반도 전쟁시, 한미동맹이 작동하면 핵을 사용하겠다는 협박입니다. 제6조는 핵을 사용할 다섯 가지 조건들을 명시하고 있는데, 핵 포함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행해졌거나 임박한 경우, 지도부에 대한 재래 또는 핵공격이 행해졌거나 임박한 경우, 국가전략자산들에 대한 치명적 공격이 행해졌거나 임박한 경우, 전쟁시 확전을 막고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기타 국가존립을 위해 핵대응이 불가피한 경우 등입니다. 6조의 내용을 종합하면 상대가 핵을 먼저 사용했든 안했든 또는 어떤 위협이 있었든 없었든 김 위원장이 판단을 하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어서, 서방국가들에는 황당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엔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많은 나라들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의 내용은 북핵 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들에게는 전혀 의외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북한의 핵전략이 초기의 핵억제 전략에서 핵전투 전략을 거쳐, 선제 핵사용 및 대남 선제 핵사용 독트린 등으로 강화되어온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북한은 2006년 핵실험 이후 억제와 방어용으로만 핵무력을 보유한다는 억제전략을 표방했지만, ‘자위적 핵보유법’을 통해 핵사용 독트린을 천명했습니다. 또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상대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제 핵사용 포기(NFU)’ 정책을 선언했지만, 2022년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위원장이 연설 또는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 핵사용 의지를 표방함으로써 이 또한 폐기되었고 사실상 한국을 선제 핵사용의 표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즉 이번 법령은 북한이 표방해온 핵전략과 핵정책 그리고 대남 핵사용 위협을 더욱 노골적으로 총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북한의 핵위협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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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