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제5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 9월 19일, 두 정상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과 별개로 한국의 송영무 국방장관과 북한의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라는 문건에 서명했습니다.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을 예방하고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채택된 이 합의서는 지상, 해상 그리고 공중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완충구역을 설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으로 각각 5km씩 10km폭의 완충지대를 설정하여 포병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으며, 서해에는 한국의 덕적도에서 북한의 초도까지 동해에는 한국의 속초에서 북한의 통천까지 약 80km 길이의 해역을 완충해역으로 설정하여 포병 및 함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공중에서는 동부 40km 그리고 서부 20km씩 총 80km 및 40km의 공역을 고정익 항공기의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했고, 헬기는 10km, 무인기는 동부15km 및 서부10km, 그리고 기구는 동서부 구분없이 25km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민간여객기 운항과 산불진화 및 환자수송을 위한 비행은 예외로 명시했습니다.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작전수행절차에도 합의했습니다.
지상 및 해상에서는 군사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두 차례의 경고방송과 두 차례의 경고사격을 거치도록 하여 총 5단계의 절차에 합의했으며, 공중에서는 경고교신 및 신호, 차단비행, 경고사격 등을 거쳐 군사적 조치에 들어가도록 하는 4단계의 절차에 합의했습니다. 이와 함께, 비무장지대 내 모든 감시초소(GP)의 철수를 추진하기 위해 우선 상호간 거리가 1km 이내인 남북의 각 11개 초소들을 2018년 12월말까지 철수하기로 했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를 위해 남북 및 유엔사 간 3자 협의체를 구성하여 약 한달 이내에 지뢰제거와 비무장화를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한강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여 남북간 공동수로조사 및 민간선박의 이용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위해 금년 12월말까지 현장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이렇듯 좋은 목적과 취지로 남북 간에 군사분야 합의서가 채택되었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이 합의서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즉, 전문가들 사이에 안보 원칙에 위배되는 내용들이 많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전문가들은 공자(攻者)와 방자(防禦者)의 차이점을 외면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을 위시하여 수많은 군사도발을 자행해온 공자의 입장인 북한에게는 항공정찰이나 감시초소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북한의 도발을 막는 입장인 방자인 한국군에게 있어 ‘눈과 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 생존 수단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비행금지구역이 한국군과 미군의 정찰활동 만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둘째, 전체적인 군사력 균형이 도외시되었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은 재래 군사력에서의 양적 우위에 더하여 핵무기, 화생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분야에서 독점적 우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북한이 핵폐기를 구체적으로 약속한 상태가 아니며, 핵폐기 이후 화학무기와 생물무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약속도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한국군이 우위를 가진 재래 군사력에서의 질적인 우위를 제약하여 전체적인 군사적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셋째, 군비통제의 기본이 위배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군비통제란 군사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력과 군사태세를 ‘상호 조정’하는 것이지, 결코 군사력을 무조건 줄이고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과 오인식으로 인한 군사충돌을 막아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상호간 공격무기를 줄이고 방어무기를 보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공자의 공격용·도발용 무기들을 그대로 둔 채 방자의 방어수단과 억제태세를 제약하면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성이 오히려 악화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서해 완충해역입니다. 이번 합의서의 그 어디에서 기존의 북방한계선(NLL)을 준수한다는 표현은 없으며 지금도 북한의 황해도에는 한국의 서해와 북방도서 그리고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해안포, 방사포, 야포 등을 포괄하는 4군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아무런 합의도 없이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방어훈련과 도발대응 훈련을 금지시키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군사분야 합의서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남북 간 신뢰구축,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추동력 제공, 전쟁 위험의 궁극적 해소를 통한 항구적 평화정착 등 좋은 목표들을 담아낸 것이지만,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증명되지 않은 단계에서 한국에게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이런 저런 우려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은 북한이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확실하게 약속하고 영구히 도발을 포기한다면 우려들을 불식시키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조금씩 부분적인 양보조치만을 취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내려고 한다면 유종의 미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