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 직후 오직 외부 위협 억제를 위해 핵을 보유한다고 했습니다. 남북대화가 열리면 “설마 동족을 향해 핵을 사용하겠느냐”라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개정 헌법에 “불패의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이라는 표현을 포함시켰고,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는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억제용으로만 핵을 보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랬던 북한은 2013년에 제정한 ‘자위적 핵보유법’ 제1조를 통해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핵보유의 목적으로 명시했지만, 제5조에서는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에 대해 핵사용과 핵위협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얼핏 온건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거친 내용입니다. 한·미 양국은 동맹국으로서 전시에 연합대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제5조는 전쟁이 나면 무조건 핵을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2022년 4월 25일 열병식에서 “핵무력은 핵전쟁 방지 사명에만 속박되지 않는다, 우리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두 번째 사명을 결행하겠다”고 했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5월 5일자 담화에서 “전쟁 시 핵무력의 사명은 초기에 상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남 선제 핵사용’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어서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는 2013년 ‘자위적 핵보유법’을 강화·대체하는 ‘핵무력 정책법’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핵무력 법제화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핵보유의 불가역성을 반복적으로 선언함으로써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는 핵이 없으면 공산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김일성 주석의 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는 외세로부터의 자위수단, 정권의 권위와 정통성을 담보하는 내부 홍보 수단, 남북관계를 지배하는 완력 수단, 주체 통일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한미동맹을 무력화하는 수단 등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즉 어떤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지켜내야 하는 ‘보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법제화를 통해 이를 반복적으로 확인, 재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북한의 핵전략과 핵독트린의 진화 과정을 나타냅니다. 미국과 소련 등 핵강국들의 핵전략은 초기의 ‘핵전쟁 억제용 응징보복’ 전략에서 ‘제한적 핵사용’ 전략을 거쳐 ‘핵전쟁 승리를 위한 핵사용’ 전략으로 진화되어 왔는데, 북한의 핵전략도 이 경로를 따라가면서 ‘방어와 억제를 위한 핵보유’와 ‘보복응징용 핵사용’에서 ‘전쟁 승리용 핵사용’ 및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로 진화되어 왔습니다. 즉 초기의 약소국형에서 강대국형 공세적 적극적 핵전략으로 발전되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웃나라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불안하게 생각하지만, 핵무력 정책법은 최고 지도자 한 사람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누구에게든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핵무력 고도화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에 대한 북핵 위협은 앞으로도 부단히 가중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핵개발을 시작한 1950년대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핵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미·북 회담, 4자 회담, 6자 회담, 남북회담 등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도, 그리고 북한 스스로가 평화공세를 펼치던 시기에도 뒤로는 핵개발을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평양의 주장대로라면,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장거리 탄도·순항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핵어뢰와 전술핵운용 잠수함 등의 각종 플랫폼과 핵투발수단들을 보유한 핵강국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평양 정권은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핵무력 고도화를 꾀하면서 핵전략을 강화해왔습니다. 북한 주민의 궁핍이나 한국 국민의 불안감은 전혀 감안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남 핵위협을 가하면서 ‘핵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이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이 지금까지는 비핵을 준수하면서 독자적인 재래군사력,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공조 등으로 핵위협에 대처해왔지만 그리고 미국도 핵평화를 위해 한국의 핵무장을 만류하면서 대신 확장억제를 제공해 왔지만, 북한이 안보불안을 야기하는 핵행보를 계속한다면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인내심은 언젠가는 바닥날 것입니다. 이후에 전개될 상황은 북한에 전혀 유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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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