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평양에서는 참으로 이상한 축구경기가 열렸습니다. 이날 김일성경기장에서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대회의 아시아 2차 예선 3차전 경기인 한국과 북한 간의 시합이 열려서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관중도 응원도 취재도 중계도 없는 ‘깜깜이’ 경기였습니다. 개최국의 결정에 의해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진 것은 월드컵 사상 최초였습니다.
월드컵은 1930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축구경기로서 하계올림픽 다음으로 큰 지구촌 축제입니다. 200여개 국이 참가하여 치열한 예선을 거쳐 32개의 본선 진출국을 가리는데, 치러야 하는 경기가 많아 예선전은 3년전부터 시작합니다. 예선전 동안에도 뜨거운 응원과 중계가 펼쳐지고 온 국민이 열광함은 물론이며, 본선 경기는 전세계에서 약 7억 명이 시청합니다. 그래서 한국 측은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 및 응원단 방북, 중계방송 등을 위한 협력을 북한에 요청했지만 북한은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한국 선수단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북한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했던 점은 이 말고도 많았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베이징에서 휴대폰을 모두 한국대사관에 맡기고 북한에 들어가야 했고, 14일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 소식도 15일 오전에야 한국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인터넷이 되지 않아 숙소인 고려호텔에 와서야 이메일을 보낼 수 있었으며, 한국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 등 공식일정 외에는 호텔에서 나갈 수 없는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가져간 식자재들을 모두 압수당하는 바람에 호텔 음식만 먹어야 했으며, 호텔 직원들이 눈조차 맞추어 주지 않는 쌀쌀한 분위기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중계가 없는 탓에 한국 축구팬들은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에 올려진 문자를 보고 경기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에 초대합니다” 라는 말로 남북 축구경기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문자로 월드컵 경기결과를 보는 웃지못할 코미디가 벌어진 것입니다. 경기장 안에서도 그랬습니다. 관중도 기자도 방송카메라도 없는 텅 빈 경기장에서 북한 선수들은 전쟁을 하듯 거친 태도로 플레이에 임했고, 감정싸움과 몸싸움도 잦았으며, 남북이 각각 2장식 엘로카드도 받았다고 합니다. 경기를 마치고 10월 17일 인천 공항으로 귀국한 손홍민 한국선수단 단장은 “북한팀이 너무 거칠게 나와서 경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면서 이런 경기에서 부상 없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어떤 생각에서 화기애애해야 할 스포츠 경기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분명히 시대적 추세나 세계적인 관행과는 동떨어진 것이고 아시아축구연맹의 경기운영 매뉴얼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내 스포츠인들 사이에서는 아시아축구연맹에 징계를 촉구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평양 축구를 본 후 한국의 젊은이들도 인터넷 공간에서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작년 평창 올림픽때 우리는 그토록 북한팀을 환대해 주었는데 우리 팀이 평양에 가면 찬밥신세에 신변위험까지 느껴야 한다면 이것이 무슨 스포츠 교류인가” 라는 볼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내년 2월 제주도에서 열릴 2020년 도쿄 올림픽 예선 남북 여자축구 경기가 걱정입니다. 우리 팀이 평양에서 당한 것을 되갚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평양에서 북한이 보여준 태도가 악순환을 유발하는 나쁜 선례가 되어 향후 남북 간 스포츠 교류를 망치게 될까 걱정인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남과 북은 앞으로 더욱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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