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에서 군비경쟁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독일, 폴란드 등이 군비증강을 서두르는 중에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팽창주의와 북한의 핵무력 증강이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나토(NATO)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GDP의 2%로 올리자고 제안했고, 이에 부응하여 독일은 GDP의 1.53%인 현 국방비를 2024년까지 2%로 올리기로 하고 방위기금 확보에 필요한 추가 채권발행을 위해 헌법까지 개정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GDP의 1% 수준 국방비를 유지해온 일본도 지난 5월 바이든-기시다 정상회담 직후 2%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본격적인 재무장을 선언했습니다. 12월 16일 일본 각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3대 국가전략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전략서들은 “일본은 전후 가장 엄격하고 복잡한 안보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전제하고,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통해 국익과 평화 그리고 안전을 지켜 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변국에 대한 평가도 강경해졌습니다. 중국을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북한을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으로 규정했으며 그리고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며 유럽을 위협하고 중국과 전략적 연계 움직임을 보이는 안전보장상의 강한 우려”로 표현했습니다. ‘러시아와의 협력’이라는 종전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필요시 상대 영역에 반격하는 ‘반격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증강하겠다고 밝혔고, 사이버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능동적 방어’도 강조했습니다. 물론, “전수방위 원칙을 변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제공격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국제법상으로 인정되지 않는 ‘임의적 예방적 선제공격(preventive strike)’을 삼간다는 뜻일 뿐,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또는 선제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적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먼저 공격하는 합법적인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를 삼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분석대로라면 일본은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며, 자위대를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 로 선언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번 전략서 발표를 사실상의 ‘공식적 재무장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2023년에서 2027년까지 5년간 방위비로 43조 엔(약 415조 원)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대로 된다면 GDP의 0.97%인 금년 방위비 5조 4천억 엔이 2027년에는 GDP의 대비 2%인 11조 엔(106조 원)이 되어, 국방비가 세계 3위 규모가 됩니다. 일본 정부는 이 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5년간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 구입, 일본산 12식지대함유도탄 개량,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 원거리 타격 능력 강화에 5조 엔(48조 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재무장 선언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성명을 통해 일본의 새 국가안보 전략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 태평양을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처’라고 환영하고 “일본의 방위투자 확대가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결연한 반대’를 표방하고 “일본이 근거 없이 중국을 불신하면서 군사력 증강을 위한 핑계를 찾기 위해 중국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근거 없이 중국을 불신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급격한 군사력 증강, 노골적인 남중국해 및 서해 내해화 시도, 군용기들에 의한 빈번한 한일 방공식별구역 침범, 북한 핵무력 증강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방조와 비호 등 중국의 팽창주의 행보가 군비경쟁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전략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반복함으로써 한일 안보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측면도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전문가들이 “일본이 과거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군비확장을 강행하는 것이 한국 국민의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한일 양국 정부에게는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한일 및 한미일 안보공조를 다져 나가가는 것이 당면과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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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