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에게는 12월이 되면 꼭 회고하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1941년 12월 7일에 있었던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입니다. 금년에도 미군은 진주만 공습 제79주년 추모행사를 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화상 연설을 통해 행사를 진행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SNS를 통해 추모의 글을 올렸습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미국은 당시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은 "1941년 12월 7일 목숨을 잃은 2천 4백 명의 장병과 민간인들을 기억하자"면서 "어두웠던 그 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한 수많은 영웅들을 추모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미 정부가 보관하는 기밀문서들이 비밀에서 해제되면서 진주만 공습과 관련한 새로운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외형적으로는 29대의 전투기 손실 만을 입은 채 미국 군함 21척과 전투기 180여 대를 파괴한 성공적인 기습 작전이었지만 전략적으로 보면 자멸을 자초한 '완전한 실패'였음을 지적하는 분석글들도 많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80년 전 군국주의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통해 보여준 무지와 실패를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일본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미국의 전쟁수행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중국 일부와 동남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 하에 석유, 주석, 고무 등 전쟁물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남쪽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일본의 지휘부는 미국의 태평양함대만 무력화시키면 가능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항모 8척, 잠수함 67척, 기타 전함 181척 등 총 260여 척의 군함을 거느리는 해양강국으로서 일본의 해군력은 항모 3척, 잠수함 56척 등 총 170여 척의 군함을 보유했던 미국 태평양함대를 능가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판단은 미국의 거대한 산업력을 간과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진주만 공습은 미국의 방심을 틈타 일시적인 성과를 올렸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으로 하여금 엄청난 전쟁수행 능력을 작동시키게 만든 도화선이었습니다.
둘째, 사실 일본은 태평양함대를 궤멸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나구모 제독이 이끄는 일본의 기동대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대형 전함 4척을 침몰시키고 다른 4척을 크게 손상시키는 등 도합 21척을 파괴했지만, 해양작전의 핵심 수단인 미국의 항모들을 단 한 척도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나구모 제독은 진주만에 미국 항모가 없음을 알고 실망했지만 그래도 많은 전함들을 파괴한 것으로 기습 작전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했고 제2파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했는데, 이 또한 엄청난 전략적 실패였습니다. 하와이에는 함선정비창, 조선소, 잠수함 기지 등 해군 관련 시설들이 많았고 특히 태평양함대가 10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6억 리터의 유류를 저장한 유류저장고도 있었는데, 일본군은 이런 시설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군함과 전투기를 파괴하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만약, 당시 일본군이 제2파 공격을 통해 이런 시설들을 파괴했더라면 미 태평양함대가 그토록 신속하게 전쟁 채비를 갖추고 태평양전쟁에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넷째, 일본이 선전포고를 늦게 전달한 것도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일본군은 애초부터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습이 임박한 30분 전에 선전포고를 전달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주미 일본대사관의 문서작성 작업이 늦어지면서 일본의 선전포고가 미국 국민들에게 전달된 시점은 이미 공습이 시작된 이후였습니다. 이는 미국 국민의 분노를 크게 자극했고, 이 분노는 미국이 태평양 섬들을 차례대로 수복하고 원자탄 투하를 통해 일본을 굴복시킬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진주만 공습과 일본의 패망이 주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은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무시하는 군국주의 독재국가로서 오로지 무력과 오기 만을 앞세우고 강대국 놀음을 하다가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인데, 이는 오늘날까지 스스로의 국력과 위상을 뛰어넘는 무기와 군사력을 추구하면서 강대국 놀음을 시도하는 독재국가들이 교훈삼아야 할 대목일 것입니다. 또한, 진주만 공습 추모행사에서 미국 사람들이 희생자를 추모하자고 하면서도 진주만 공습의 가해자인 일본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발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념할 만한 대목입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그토록 처절한 전쟁을 치른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새로운 질서 하에서 두 나라가 민주주의 동맹국으로서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엄청나게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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