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저물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7일 평양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주기 중앙추도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로써 김정은 총비서는 3년 탈상(脫喪)을 마무리하면서 유훈(遺訓)통치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스스로 자신의 시대를 열어갈 채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김정은 시대가 얼마나 순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실하게 예단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지금까지 김정은 정권의 3년 통치는 세계의 기대와는 달리 위태로운 줄타기로 일관하여 북한의 장래에 더 많은 예측불가성의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우선, 경제분야는 핵무력과 경제를 동시에 건설한다는 무리한 병진정책의 굴레에 잡혀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한 채 3년을 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정부가 24개에 달하는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대대적인 외자유치에 나섰지만 실적은 4억 달러 수준에 그쳤을 뿐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유엔이 각종 제재조치를 강화하면서 북한경제는 더욱 고립되었고 2013년도 교역규모도 73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1조 750억 달러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남북간 교역이 여전히 막혀있는 상태에서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더욱 커졌으며 광물자원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북한의 교역구조도 악화되었습니다. 장성택 처형과 핵실험으로 인해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중국 관광객마저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관광사업을 통한 외화벌이도 사실상 구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정치외교 분야에서의 실적도 고립무원이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핵포기를 거부하면서 미국과의 대화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고, 중국과의 관계악화는 북한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다섯 차례나 만났지만, 김정은 정권은 집권 3년이 지나면서도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60년 혈맹을 자랑하는 북-중 동맹의 초라한 현주소를 나타내기에 충분한 성적표입니다. 북한은 일본과의 대화를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강력한 미일동맹 체제가 작동하는 중에 일본이 북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에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러시아에 보내 북-러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석유가 하락으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친러시아 정책을 통해 중국에게 메시지를 주고 고립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북한의 이러제중(以露制中) 전략이 성과를 나타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2014년은 북한이 인권문제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질책 받은 한 해였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에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유엔총회는 북한인권 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으며, 사상 최초로 유엔안보리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의제로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유엔총회, EU 등을 대상으로 북한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세적 외교를 펼쳤지만, 한 마디로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북한이 성과를 거둔 것은 군사분야뿐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이후에도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군사적 강성대국'이라는 목표에는 한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이제 곧 2015년 양(洋)의 해가 시작됩니다. 양은 선천적으로 온순한 동물입니다. 목동들의 말을 들어보면 양은 일단 잡아서 가슴에 안으면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않고 순순히 털깎기에 응한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북한도 양처럼 온순한 대외정책으로 돌아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무모한 군사강국의 길을 포기하고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고립으로부터 탈피하여 경제도 살리고 스스로의 위상을 고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앞세우고 대남 군사도발을 자행하고 전쟁위협을 반복했지만, 이러한 무모함은 한국과 세계의 대북 경계심을 강화시키면서 남북간 교류협력을 차단하여 북한 스스로를 더욱 심한 고립과 궁핍 속으로 빠져들게 할 뿐입니다. 2015년에는 북한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