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물질적 부담을 시킨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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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형법 238조는 물질적 부담을 시킨 죄입니다. 그에 의하면 “지원, 후원, 꾸리기, 사업보장과 같은 각종 명목으로 물질적 부담을 시킨자는 1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특히 대량의 물질적 부담을 시킨 경우에는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북한형법에 이러한 죄명이 없었습니다. 2004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이 조항이 새롭게 첨부되었고 2015년에 개정형법에는 무거운 경우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었고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주민들이 늘고 있으며 북한지도부도 이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에도 주민들에게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물질적 부담을 시키는 현상이 생겨 불만이 늘고 있습니다. 올해 8월 북한 황해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큰물피해를 입었습니다. 국제적십자사에서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35만달러의 특별지원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피해지역 주민들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매 세대들에서 강냉이와 물건을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9.9절을 맞으며 김일성 김정일기금을 내라는 독촉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기금은 김정은이 등장한 후 금수산기념궁전, 동상을 개건 보수를 주민들의 충성의 마음을 모아서 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것인데 공식적인 취지와 달리 자각성이 아니라 강제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금 모집도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인 모금으로 변했습니다. 당국에서는 은행에 이 기금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과까지 내왔습니다. 기념일마다 충성심을 운운하면서 돈을 내라 하니 그 부담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다른 나라에도 자연재해를 입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합니다. 남한에서는 연말이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 열매, 적십자회, 구세군 등에서 모금 운동을 진행합니다. 남한의 단체들이 북한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자금도 상당수 모금을 통해 얻습니다. 특히 남한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을 때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운동은 철저히 자발적인 운동입니다.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 없이 강제로 진행되었을 때는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또한 이러한 운동을 벌일 때에는 기금의 모금과 사용 과정이 모두 공개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시키는 행위는 반강제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명목상으로는 자발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살림 형편이 넉넉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달에 몇 번씩 내야 하는 물자나 돈을 자발적으로 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국가와 집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북한주민들이라고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북한지도부는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간부들을 처벌하는 법까지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지 집행하고 처벌하는 간부들도 억울 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하지 않으면 위에서 비판을 받고 아래에서는 주민들에게 냉대를 받습니다.

물질적 부담을 시키는 장본인은 사실 위에 있습니다. 국가에서 재정을 투자해서 모든 사업을 진행하면 구태여 주민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재정이 없으면 동상을 세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북한형법에서도 물질적 부담을 시킨 죄는 정상이 무거우면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형을 매겨야 하는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