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열렸던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수정한 규약이 얼마전에 공개되었습니다. 수정된 규약에서는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문구 대신에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 발전을 실현한다”는 문구를 넣어 당의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당원의 의무 5항에 있었던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는 구절도 삭제했습니다. 조국통일에 대한 북한이 입장에서 공식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조국통일은 김일성의 평생 꿈이었습니다. 공산주의보다 민족주의 성향이 더 강했던 김일성은 통일을 목적으로 6.25전쟁을 일으켰지만 실패했습니다. 전후에 김일성은 전쟁 실패 때문인지 통일에 더 집착했습니다. 그는 조국통일을 민족 최대의 숙원이며 한시도 미룰 수 없는 혁명과업으로 규정했습니다. 북한이 남한보다 잘 나갈 때인 1960년대에는 중앙당에 남조선 담당 부서를 두고 통일혁명당 창건, 무장 유격대 파견 등 남한 혁명운동에 직접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기부터 남북의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남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1,700달러, 1990년 6,600달러 2000년 12,000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1980년 1,000달러라고 선포한 이후 계속 하락했고 1990년에 들어서면서 국가경제가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는 남한의 발전상을 당원들과 주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남한에서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동의어로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인민들이 제국주의 침략 세력과 봉건 세력을 반대하고 민족적 독립과 나라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실현하기위하여 벌리는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한이 여전히 뒤떨어진 식민지 반봉건 사회, 즉 해방직후의 북한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남한 농촌은 북한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발전된 현대적 농촌으로 변했고 지주의 착취를 받는 소작농이 없었습니다. 남한이 ‘식민지 예속 국가’라는 규정도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입니다. 남한에서 주권은 남한주민에게 있으며 그 나라 주민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는 독립국가입니다. 북한이 중국에 많이 의존한다고 해서 중국의 식민지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남한이 미국에 많이 의존한다고 해서 미국의 식민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늦었지만 이번 당규약에서는 남한이 뒤떨어진 반봉건 국가이며 식민지국가라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조국통일을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당원의 의무를 삭제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북한지도부의 의중이 은연 중에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지도부는 공식석상에서는 남한을 얕잡는 무례한 언행을 쏟아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남한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를 한편만 보아도 교화형을 매기고 가정에서 쓰는 남한 상품을 회수하는 등 극단적인 대책들을 취하는 것은 북한 지도부의 남한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북한주민들이 다 남한으로 넘어가겠으니 남한과의 접촉을 원천 봉쇄하여 북한에서만이라도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지금 북한 지도부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사실 조국통일이란 구호도 지우고 싶지만 이것을 지워버리면 북한주민들이 못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습 정권 아래서 선대 수령의 유훈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수정한 규약에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를 남겨둘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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