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여성의 힘으로 만드는 남녀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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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조사하면 엇갈리는 답이 나옵니다. 북한지도부는 북한에서 남녀평등이 훌륭히 보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7월 30일 남녀평등권 발포일을 맞으면서도 북한 여성들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남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찾게 해준 수령의 은혜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 여성들이 많은 차별을 받으며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1946년 북한에서 발포한 남녀평등권 법령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은 정치, 경제, 문화적 권리를 보장받도록 함으로써 그들을 봉건적 질곡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북한 여성들의 처지는 봉건적 예속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여성들에게 “가정에서는 남편이 국가 일을 잘하도록 받들어 주고 아이들을 혁명가로 훌륭하게 키우며 직장에서는 혁신하는 만능의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를 위해 ‘3대기술혁명’을 추진하여 여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성이 가정과 국가 일을 다 맡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고 따라서 여성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가정일을 전적으로 맡고 중요한 일로 존중 받는 국가적 업무에서는 부차적인 일을 맡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자는 존중 받고 여자는 하대 받는 가부장적인 관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게 되었습니다.

1990년 국가경제의 파산으로 여성들의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당과 국가는 월급도 배급도 주지 않으면서 남성들을 국가 일에 의무적으로 동원시켰습니다. 식구들을 부양하는 일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되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성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무거운 등짐을 지고 수십 리 길을 걸었고, 밤을 새워가며 시장에서 팔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안전원, 규찰대 등 국가권력의 온갖 박해와 통제 속에서 시장을 지켜야 했습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을 담당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여성들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당과 국가가 외면한 남편과 아이들을 지켜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2000년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고난의 행군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식구를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일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 여성들은 새해 벽두 거름 생산으로부터 시작해서 농촌 동원, 건설장 동원, 인민군대 지원, 등 각종 동원에 노력을 바치거나 돈을 바치는 등 국가까지도 부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지도부는 이러한 여성들을 찬양해 줄 대신, 유령 인간 취급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신문 방송 그 어디에도 실제로 가족을 부양하고 나라를 부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시장에서의 생존은 너무도 어렵지만 이 과정에 여성들은 국가나 남편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고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남녀 평등은 여성이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가능해지며 이러한 의미에서 북한 여성들은 스스로 남녀평등을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올해부터 사회주의 국영경제 복귀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시장 단속을 강화하고 여성들에게 직장에 나가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영경제에로의 복귀는 여성들이 남편이 가져다 주는 식량표와 생활비에 의존해서 살게 만들었던 제도를 복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여성을 다시 가부장적 국가에, 남성에 예속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은 여성을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