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탈북민의 재 입북사건과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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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된 바와 같이 얼마 전 남한에 온지 3년이 된 탈북민 김금혁이 북한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그의 월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소식을 알려준 것은 북한 뉴스였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직접 주재하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하고 월북한 탈북민으로 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비상방역대책을 토의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개성시의 완전봉쇄 및 구역별, 지역별 격폐와 격리, 검진사업이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김정은 주재로 정무국 회의를 열고 개성에 식량과 생활보장금을 당 중앙이 특별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와 관련한 긴급조치를 취할 것을 해당 부분에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보내준 특별지원물자를 전달하는 모임도 열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재입북 사건이 부각되게 되었고 그가 월북하기 전에 인터뷰했던 영상을 5만 명 넘는 사람들이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탈북한 이유와 탈북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가 탈북한 직접적 이유는 살기 너무 어렵고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지되면서 공단사람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시장까지도 멎다시피 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로 근근이 살던 김금혁은 너무 살기가 어려워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나 산에서 헤매던 그에게 갑자기 남한지역에서 번쩍이는 불빛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는 남한에 가면 고문하고 죽인다는 말을 믿고 산 순진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불이 번쩍이는 저곳으로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앞뒤 생각할 것 없이 강에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7시간 동안이나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듣지 못하던 귀도 고쳤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너무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한에서는 그가 다시 돌아간 이유로 탈북여성을 성폭행한 것이 문제로 되어 경찰조사를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두려운데다 고향과 부모님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이번 탈북자 월북사건에 대한 북한의 전례 없는 대처는 북한의 코로나 방역체계의 우월성이 아니라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는 계기로 되었습니다. 남한에서는 김금혁의 월북 전 행동경로를 조사하고 그와 접촉한 사람들을 전수 검사했는데 코로나 감염자가 없었습니다. 그가 살던 지역에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강을 헤엄쳐 건너다보니 감기에 걸려 고열과 재채기가 나타난 것을 코로나 증상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개성과 같은 큰 도시에도 코로나 진단키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고열과 기침증세를 보이는 사람을 무조건 코로나 환자로 진단하고 격리하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금혁의 월북 사건은 개성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로 되었습니다. 이번 긴급지원은 완전봉쇄로 인한 생활상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김금혁이 살기 어려워 불빛이 환한 남한으로 갔다는 사실이 지도부에 더 큰 충격을 주었기때문일 것입니다.

1990년 이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탈북했고 그 중 3만 5천명이 남한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도 수십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나 정무국 회의에서 토의하고 온 나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브라질 나비의 날개 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어 미국에서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별치 않은 작은 사건으로 일이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김금혁 월북사건이 몰고 온 파장과 같은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