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죽어서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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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은 추석입니다. 추석은 민속 명절 가운데서 음력설과 함께 가장 큰 명절로, 남한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추석에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해왔습니다.

남한에서는 추석에 묘지 벌초를 할 뿐 아니라 고향을 방문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에서 지방에 있는 고향을 찾다 보니 내려갈 때나 올라올 때는 극심한 교통 정체가 발생하곤 합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이동을 극히 자제하기를 부탁하고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이름 지은 추석의 자동차 행렬이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추석에 조상 묘를 찾습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묘지 앞에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절을 하고 가족 친척이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이 풍습으로 되었습니다. 한때 북한에서는 추석을 쇠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추석을 다시 쇠도록 허용하자 주민들은 더 열심히 묘지를 찾고 있습니다. 추석이면 묘지를 찾는 사람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산마다 사람들이 하얗게 덮이곤 합니다.

떠나간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오래된 풍습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 준, 자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조상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 국가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시신은 특별한 곳에 매장하고 그에 대한 추모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합니다. 남한에는 국가를 위해 많은 업적을 쌓거나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현충원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이 있습니다. 사망한 사람에 대한 추모는 떠나간 사람에 대한 애도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국, 남한과 북한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로서 조상을 추모하는 예절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조상을 잘 모시지 못하는 것을 큰 불효로 여겼고 그러면 자신에게 화가 돌아올 것이라는 미신이 존재합니다. 서방은 우리 민족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묘지를 가까운 곳에 두고 고인이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추석에 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반도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은 추석에도 고향에 있는 조상의 묘를 찾지 못합니다. 북한에 가족 형제를 둔 실향민들은 반세기 넘도록 북한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 자식들을 그리워하다가 고향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에도 남한에서는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마련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북한에는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헤어진 가족 친척의 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범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생사조차 가족 친척들에게 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묘도 없습니다.

봉건시대에는 반역죄를 지은 사람들의 시체를 돌려주지 않거나 죽어서 죄가 드러날 경우 무덤에 묻힌 시신을 꺼내서 다시 훼손하는 부관참시라는 형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이러한 일은 무지했던 옛날의 역사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냉전이 해체된 후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허상이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남쪽에서 희생된 북한 군인들이 묻힌 적군 묘가 있습니다. 그들은 6.25전쟁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남한을 반대하는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희생된 사람들입니다. 시신을 넘겨주겠다고 했지만 북한이 넘겨받는 것을 거부하자 그들을 북녘땅이 바라보이는 파주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묻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남한 사람들은 한때는 적이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추모하곤 합니다. 그러나 북한만은 여전히 이데올로기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인륜에 반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맞으며 가족 친척을 만나지 못하고 외로이 누워있을 이들에게,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무덤도 없이 묻혔을 이들에게 삼가 추모의 절을 드립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