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식량 단속 포고문

0:00 / 0:00

북한당국이 식량단속에 관한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포고문에서는 생산된 알곡을 국가에 바치는 과정에 질서를 어기는 현상이 나타나면 최고 사형까지 구형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북한당국이 식량단속 포고문을 발표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올해 북한의 농사작황이 좋지 않은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올해 수해와 고온의 영향으로 벼와 강냉이, 감자 등 주요 알곡생산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남한도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이상기후현상으로 과일과 채소 생산량이 줄어 물가가 올랐습니다.

그러나 농사작황이 좋지 않은데 대한 대책마련은 남과 북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남한은 국가가 예산을 풀어 부족한 농산물을 수입하는 방법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농민들이 생산한 알곡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해서 국가에 바치는 알곡량을 보장하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것은 농민들입니다. 농업생산성이 매우 낮은데다 국가의 수탈이 도를 넘어 생계유지조차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생산량에 비례하여 정한 양만큼 국가에 바치도록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많은 수매계획이 하달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국가에 알곡을 바치고 나면 남는 것으로 농량조차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장에서는 가을이 되면 여러 가지 불법적 방법으로 농량을 보충해왔습니다. 이번 포고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알곡을 계량할 때 저울을 조작하여 실제보다 생산량을 낮추거나 농사를 위해 쓴 비료와 농자재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에 바쳐야 할 알곡 수량을 될수록 줄이려고 했습니다. 개인들도 수확 철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농작물을 훔쳐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국가는 이를 막기 위해 논과 밭에 무장한 군대나 보안서원들을 파견해서 알곡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과 통제는 불법적 행위를 근절하기보다는 부정부패를 확산시켰습니다. 이 기회에 간부들은 비축한 알곡을 팔아 넘겨 돈을 벌었습니다. 경비를 서라고 파견한 군대와 보안서원들은 단속한 알곡을 다시 되팔아서 자기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국가에서는 올해 농사가 안되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더 확산될 것을 우려해서 포고문을 발표했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실 북한에서 농사가 안된 것은 자연기후조건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국가의 농업정책에 기인한 바가 더 큽니다. 남한에서는 올해 북한보다 더 큰 가뭄과 홍수피해를 겪었지만 쌀 생산은 별로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치산치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자연재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업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은 농민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불합리한 농업제도에 원인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정책을 펴면서 농촌에서 가족단위 도급제를 실시한 결과 농업생산량이 급속히 늘어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가족단위도급제는 가족을 단위로 농사를 짓게 했을 뿐 아니라 알곡수매가격을 높이고 점차 의무수매 양을 줄여나갔습니다. 북한은 2013년부터 포전 담당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중국과 달리 국가수매가격을 시장가격과 크게 차이 나게 정하고 의무 수매량 제도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지어도 자기에게 차례지는 것이 크게 없는 농민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있어 포전담당제가 은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북한에서 논밭을 군인이 지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만약 국가가 수매가격을 올리고 수매량을 점차 줄여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게 하면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구태여 포고문이나 무장보초가 없어도 국가에 필요한 알곡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