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이 선포한 외화사용금지 조치로 북한에서 달러와 위안화 값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요즘 다시 외화 값이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 하락 이전수준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화사용금지 조치로 외화 값이 하락했는데 북한의 수입 상품물가는 배로 상승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계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1980년대부터 외화벌이회사, 외화상점이 생기면서 달러, 엔, 위안화가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북한경제 파산, 시장의 확대로 1990년대부터는 상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서 중국 돈이나 달러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시장가로 돈을 환전해주지 않았습니다. 북한주민들은 터무니없는 싼 값을 부르는 국가은행이 아니라 시장에 있는 불법 환전상들을 찾아가 돈을 바꾸었습니다. 거기다 북한당국은 부족한 국가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화폐를 무담보로 계속 찍어냈습니다. 북한원화의 가치는 하락했고 북한당국은 국가의 중요한 기능인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화폐개혁, 외화사용금지 조치를 동원했습니다.
북한당국의 가장 강력한 외화사용금지 조치는 2009년 화폐개혁 때 선포되었습니다. 당시 화폐개혁과 외화사용금지 조치로 1달러 당 3800원이 넘던 외화 값이 130원으로 하락했습니다. 평양에서는 앞으로 외화를 쓸 수 없다는 정부의 위협에 당황하여 주민들이 외화상점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외화상점의 상품이 동이 나고 압사사고까지 났습니다. 그러나 다시 외화 값이 상승했고 사람들은 외화상점에서 비싼 값으로 구입한 상품들을 보면서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이후 2012년, 2015년에도 외화사용금지 조치를 선포했었습니다. 그러나 외화사용금지 조치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외화사용금지 조치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외국인들까지도 외화사용금지를 통보하는 등 더 강력한 사용금지 조치를 선포하다 보니 외화가격이 20%나 하락했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 때만 해도 외화사용금지 조치로 직접적인 손해를 본 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 외화를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북한주민들이 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외화를 깔고 앉아 외화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릴 수 있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돈이 적은 사람들이 이러한 강제적인 국가적 조치에 더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헐값으로 외화를 내놓게 되고 훗날 다시 외화 값이 상승하면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시장에서 외화가격이 하락하면 원화 값이 오르기 때문에 상품의 원화가격도 동시에 하락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는 상품가격이 모두 상승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국경봉쇄 때문이지만 외화사용금지 조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부족한 외화를 보충하기 위해 담보 없이 돈을 찍어서 외화를 헐값에 사들이면 시장에 북한 돈이 넘쳐나면서 인플레가 발생하고 상품 값이 상승하게 됩니다.
2013년부터 북한에서는 시장에서 환율이 거의 고정되고 쌀값을 비롯한 물가도 지속적인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이는 북한지도부가 시장을 묵인한 결과입니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경제가 안정된다는 것을 확인해준 셈입니다. 이번에 북한당국이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개입한 결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환율이 불안정해지고 물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화폐개혁 때 실패했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가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국가의 강제력으로 시장을 다스리겠다는 의욕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지도부가 정책실패를 아래에 떠넘기는 관행도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얼마 전 환율 하락, 시장가격 상승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재정상, 중앙은행총재를 해임시키고 평양의 대환전상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사실여부는 모르겠지만 화폐개혁의 책임을 지고 처형된 박남기 전 계획재정부장이 했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화폐개혁을 나 혼자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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