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쌀은 곧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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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한 통계청에서 발표한데 의하면 주민들의 1년간 알곡 소비량이 70.9kg으로 전년보다 0.4% 감소했다고 합니다. 남한사람의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69.3g으로 한 그릇도 되지 않는 양입니다.

남한은 북한보다 논이 많지만 인구도 북한의 두 배나 됩니다. 남한에서도 1960년대는 보리 고개를 넘겨야 했고 1970년대에도 쌀이 충분하지 않아 잡곡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한도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등 소비를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쌀 생산이 획기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그동안 실시해오던 쌀 소비 규제조치를 모두 해제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해 쌀 소비량이 늘었을 뿐 1979년에 136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소비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림이 펴이면서 주민들은 축산물, 수산물, 과일, 채소, 식용유 등을 더 많이 먹게 되었고 대신 쌀 소비가 감소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추세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의 일본,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모든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쌀 생산은 늘어나는데 곡물소비가 줄어들자 이것 역시 정부의 고민으로 되었습니다. 농민들의 생존이 문제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농민들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는 한편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알곡이 부족합니다. 북한에서는 올해도 알곡생산을 늘리기 위해 퇴비생산전투로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의 목표는 이밥이 아니라 잡곡밥이라도 풍족하게 먹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습니다. 이는 쌀을 많이 생산해서 주민들이 마음껏 이밥을 먹는 것이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1980년부터 모든 주민이 이밥을 제한 없이 먹기 시작했으니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남한은 40여 년 전에 사회주의가 된 것입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소원은 주민들이 입쌀에 고기국을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표 중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식주란 단어도 식의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포전에서 농사도 지어보고 농촌에 대한 현지지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달라붙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대통령이 포전 길을 걷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남한은 쌀이 남아서 고민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고 있고 경제가 계획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생산이 끊임없이 높은 속도로 발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수단이 개인소유로 되어있고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생산발전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남쪽에서 쌀이 남아돌게 된 것도 결국은 자본주의 경제의 결과입니다.

최근 북한에서도 조금씩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포전관리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군량미 강제납부가 없어지지 않고 있고 농업 생산물을 생산원가도 안 되는 낮은 가격으로 징수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알곡생산이 늘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도 쌀이 남아돌게 하려면 농민들이 생산한 생산물을 시장가로 팔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농업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부지런히 농사지으면 도시 못지않게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부족한 식료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공업을 발전시켜 외화를 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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