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최근 김정일의 생일을 맞으며 비행사들에게 검은 가죽 코트를 선물로 지급했다고 합니다. 검은 가죽 코트는 김정은의 옷입니다. 김정은은 2019년 11월 말,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 참관 시 가죽으로 만든 검은색 코트를 입고 등장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후 북한의 최고위급 간부들 가운데 검은색 가죽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조용원, 김여정, 현송월, 김덕훈 등 최고위급 간부들이 똑같은 가죽 코트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왔습니다. 북한주민들은 검은색 가죽 코트를 입은 사람이 권력의 실세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김정일의 패션은 잠바였습니다. 작은 키에 배가 나와 몸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김정일은 그러한 몸매를 가릴 수 있는 옷인 잠바를 좋아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작업복으로 많이 입는 잠바를 공식적인 외교석상에도 입고 나와 세상의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북한은 “인민을 위해 양복이 아닌 수수한 잠바 차림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걷는 지도자”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의 잠바는 세계 최고급의 옷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정일 역시 측근들에게 잠바를 선물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이 입었던 잠바를 선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겨울 동복과 모자를 측근들에게 주어 똑같은 옷을 입은 간부들이 현지지도에 동참하곤 했습니다.
김정일시기에는 잠바를 입는 것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옷감의 재질과 가공 수준에 따르는 차이는 있었지만 잠바는 북한주민 모두가 입는 단체복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같은 장소에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자존심에 손상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개인의 개성이 인정되지 않는 집단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주민들은 똑같은 옷을 입는데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오히려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같은 값이면 지도자가 입은 옷과 같은 것을 입으려고 합니다. 지도자가 입은 옷은 더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가죽 코트가 나오자 시장 상인들은 그것이 유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모방한 코트를 만들었고 청년들은 너도나도 구입해서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버지와 달리 주민들이 가죽 코트 입는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죽 코트는 매우 희소한 옷이 되었습니다. 김정은이 하사하지 않으면 가죽 코트를 입을 수 없으니 가죽 코트는 권력자의 징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도 과거 봉건 시기는 오늘의 북한과 유사했습니다. 당시에는 돈이 많아도 양반이 아니면 비단옷을 입을 수 없었고 양반의 등급에 따라 제복이 달랐습니다. 직위에 따라 옷을 입는 제도를 만들면 구태여 양반들이 자기의 직위를 밝히지 않아도 사람들이 윗사람을 순간에 알아차리고 알아서 복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주민들은 이 가죽 코트를 영화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북한과 구소련 영화에서 검은색 가죽 코트는 독일 히틀러나 게슈타포 그리고 남한이나 미국의 첩보 장교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주민에게 있어서 검은색 가죽 코트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력을 떠오르게 하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옷입니다.
옷차림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위엄 있고 권력적인 이미지를 가진 제복을 즐겨 입는 사람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두려워해 순순히 복종한다고 믿는, 굴절된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지도부는 김정은을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과 생사를 함께하는 지도자로 만들려고 전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옷이 김정은의 패션이 되었습니다. 자루 속 송곳을 감출 수 없다고 아무리 ‘인민적 지도자’로 치장해도 김정은의 내면은 가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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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