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북한지도부의 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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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해금강호텔을 해체하는 정황이 위성사진 등을 통해 포착되었습니다. 남한정부는 북한이 금강산에 있는 현대아산 소유의 해금강호텔을 해체하는 데 대해 공식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철거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금강산 관광은 북한에 고향을 둔 故 정주영 회장이 1천 마리의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200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습니다. 2018년 북한당국이 총동원되어 유치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이 20만 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00만여 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또한 금강산관광지구에서는 약 40여 개에 이르는 남한 기업과 현대아산 협력업체들이 특구 개발 사업에서부터 골프장, 면세점, 땅콩판매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에 의한 남한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이 중단되었습니다. 관광 중단의 책임을 두고 남북 간에 갑을논박(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손해를 본 것은 금강산 관광에 투자한 기업들입니다. 현재 현대아산은 거의 파산에 이르렀고 협력업체들도 관광중단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입니다. 어떤 거래를 할 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점과 대금을 지불하는 시점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용이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신용사회라고도 합니다.

사회주의시기 북한은 이러한 신용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처음 시장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돈을 쓰고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때 북한에는 ‘돈을 꾸면 노력영웅, 빌려준 돈을 찾으면 공화국영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노력영웅보다 공화국영웅이 되기 훨씬 힘드니 돈을 꾸는 것도 힘들지만 되돌려 받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중 무역에서 돈을 받고 주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때 북한지도부도 금강산관광지구 부동산을 몰수하고 새 사업자를 찾겠다고 발표하고 기업가를 물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제의를 받은 기업가는 상도에 어긋나는 사업을 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북한에서 시장 활동이 지속되면서 무역일꾼들과 시장상인들은 거래를 장기적으로 지속하자면 신용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북한 정권의 모습과는 달리 실제 인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북한시장에서는 신용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 10월 김정은은 금강산을 돌아보면서 “현대아산이 지어놓은 금강산 관광시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면서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우리식으로 새로 건설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심지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 탓”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오늘 북한이 해금강호텔을 해체하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지시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과 아무런 논의도 없이 해체하는 것을 보면 남한의 관계부문과 협의하라고 했던 지시내용마저 이후 바꾼 듯합니다.

개발도상국들의 경험을 보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서 관건은 투자를 유치하는 것입니다. 이번 조치로 북한의 신용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북한은 투자할 수 없는 국가로 다시금 국제사회에 각인되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1천 마리의 소를 몰고 온 故 정주영 회장과 정주영체육관을 평양에 지은 현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지도부가 염불처럼 외우던 의리도 거짓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