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북한 기자는 나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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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에서 조선기자동맹 제9차대회가 열렸습니다. 북한은 대회에서 “동맹사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과 웅대한 전망목표 관철로 들끓는 시대의 전진을 강력히 선도하기 위한 언론공세, 사상공세를 전개해 나가는 데서 나서는 과업과 실천방도들이 토의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자대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나팔수’란 단어였습니다. ‘진격 나팔수’ 구호가 대회장 한 면을 장식했고 보고서와 토론에서도 혁명의 나팔수, 항일유격대 나팔수 등 나팔수 단어가 반복적으로 올랐습니다. 북한에서는 당의 노선과 정책 관철에로 사람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에서 기자를 나팔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자에게 있어서 나팔수란 말만큼 모욕적인 말은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자는 사회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를 통해 기자는 민주주의 기능을 지원하고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론은 고객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분석하여 주민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를 위해 기자가 중요하게 지켜야 할 행동 원칙의 첫째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기자는 권력이나 돈 등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개인 또는 집단의 어떤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또한 공정보도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기자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팔수란 자기의 주견이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입장을 덮어놓고 따라 외워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자와 나팔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북한 기자들은 정말 나팔수의 기능만 수행합니다. 북한 기자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 최상의 법으로 되고 있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에는 “김일성의 교시와 김정일의 말씀, 당의 노선과 정책을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신조로 삼으며 그것을 자로 하여 모든 것을 재어보고 언제 어디서나 그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기자들은 항상 당과 수령의 현명성, 북한이 잘나가고 있다는 소식만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관행이 수십 년간 지속되다 보니 북한 기자들은 자신을 나팔수로 지칭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업으로 간주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알 권리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주민들이 사실을 아는 것을 죄로 처벌하는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반동적인 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거리낌 없이 만들어내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부의 북한 주민들은 “혁명의 나팔수, 항일유격대 나팔수란 것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라는 말로 크게 잘못된 것이 있느냐”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경기나 전투에서는 참가자들의 사기를 고무하기 위한 응원을 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응원단이 아닙니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은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 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위임 받은 편집-편성권을 공유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진 기자에게 북한 지도부는 조선기자동맹 제9차대회를 통해 정권의 나팔수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라고 재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