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태양절과 북한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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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서 태양절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나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태양절 단어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재외 대사관과 대표부들에 사용을 점차 줄이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태양절 이름을 없애는 것은 김정은을 태양으로 칭송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김정은을 형상한 모자이크 벽화가 계속 설치되고 있고 김정은 혁명사상이 등장하고 있어 김정은을 태양으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참 흥미롭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 태양으로 우러러 모시게 해야지 강제로 태양이라 부르게 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허리띠를 더 졸라매게 하는 그런 태양을 누가 따르겠으며 빛을 주지 않는 태양이 어떻게 태양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씁쓸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태양은 고대로부터 세계 각지에서 신적인 존재로 숭배 받아 왔습니다. 태양은 많은 문화와 종교에서 주권, 지혜, 정의, 생명, 사랑 등의 상징으로 존재했습니다. 인간은 높은 것과 빛나는 것을 좋은 것, 신성한 것으로 보고 숭상했기 때문에 높이 떠올라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이 신격화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해방 첫 시기부터 소련의 영향으로 김일성을 태양으로 묘사해왔습니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에서 발간한 문예도서 ‘우리의 태양 김일성장군찬양 특집’ 제목이 이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수령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으로 북한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위대한 지도자로, 태양과 같은 따뜻함으로 구석구석 그늘이 없이 주민들을 보살피고 키워주는 어머니로 신성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북한경제가 무너지고 이어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수령에 대한 태양신화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은 간부들의 동요를 막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간부 숙청을 대대적으로 진행해 사회에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또한 식량을 보장해주지 못해 수십만의 주민들을 아사시켰고 땔감이 부족해서 추위에 떨게 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수령을 비난할 수 없는 주민들은 유머(humor)를 만들어 냈습니다. “수령님은 태양이란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 가까이가면 타 죽고 멀리 가면 얼어 죽으니까...”

2020년부터 열악한 경제와 보건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한 인명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강력한 봉쇄정책을 폈고 이로 인해 북한의 경제상황은 고난의 행군시기 못지않게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자생하는 법을 배워서 고난의 행군 때처럼 무리로 죽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물가가 뛰고 벌이가 안 되어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게다가 국가는 시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복구하기 위해 시장을 억제하고 주민동원 수위를 높이고 있어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양절이란 이름을 없앤다고 하니 새로운 유머가 나온 것입니다.

“태양절이란 말을 없애는 것이 옳은 것 같아. 빛을 주지 않는 태양을 어떻게 태양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런데 북한 지도부는 이러한 아래 사정을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4월 초 105탱크부대를 현지지도하면서 돌아본, 군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주민들의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TV와 신문에 소개된 군인들의 식탁은 실제 군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식탁위에는 북한군에서 늘 사용하는 알루미늄(늄)식기와 늄접시 대신 도자기로 만든 사발과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릇 가득 담긴 쌀밥과 빨간 양념장이 뜬 국, 그리고 과일, 생수병 등 군복무시절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식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태양절이란 말을 없애는 것이 정말 옳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래 실정에 깜깜한 지도자를 어떻게 밝고 밝은 태양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