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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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판문점 남측지역에서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회담을 취재하려 온 기자만 2,85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실시간 현장 중계한 남북정상회담은 회담이라기보다는 축제였습니다. 남한에서는 김정은을 성대하게 맞아 주었고 김정은 역시 파격적인 발언으로 남한의 환대에 보답했습니다.

김정은은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 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 등 지난 시기 군사적 도발로 남한주민들에게 끼친 폐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낙후성을 인정하는 발언도 했습니다. 그전에 남한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가난한 나라라고 했을 뿐 아니라 남한 대통령이 백두산 관광을 하고 싶다는 말에 우리 도로가 불편해서 비행기로나 와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군사적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뜻의 발언도 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 “조선전쟁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한 민족의 한 강토에서 다시는 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결코 무력 사용은 없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며 핵 폐기 의사를 내비쳤고 판문점 선언문에는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넣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분단선이 높지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나” 등 통일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남한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북제재가 풀리면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려고 준비를 하는 등 분주합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김정은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북한지도자들이 주민들에게 한 말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은 광폭정치란 말을 좋아했습니다. 성분차별을 받고 있는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계급적 토대나 성분이 좋지 않은 주민들도 차별 없이 포용하는 정치를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전을 위해 성분 나쁜 몇 사람을 내세웠을 뿐 광폭정치는 없었습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정일은 “공산주의에도 도덕이 있습니다”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우해서 남한주민들의 호감을 샀고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군사적 도발을 했고 핵과 미사일을 만들었습니다. 김정은 역시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 사회주의부귀영화를 안겨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도 미래형입니다.

특히 북한은 핵 폐기와 관련하여 1990년대부터 미국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많은 약속을 했지만 그를 무시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했습니다. 제국주의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계급적 원수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북한의 계급투쟁 노선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핵 폐기를 조건으로 남북, 북미 회담에 응한 것은 호전적이던 김정은이 평화애호적인 사람으로 변해서가 아닙니다. 북한이 막다른 골목까지 왔고 그것을 김정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문을 닫아걸고 부질없는 도발로 파국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대담하게 문을 열고 세계로 나가겠는가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등소평이 모택동과 달리 개혁개방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청년시절에 프랑스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도 길지는 않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외국에 나가 살아보았습니다. 김정은은 젊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지금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김정은은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핵 폐기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