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대한민국’ 명칭 변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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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7.27 열병식 과정을 실시간 중계가 아닌 편집물로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열병식 해설과정에 대한민국 국호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호는 지난 시기 남북회담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언급되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7월 10일과 11일 김여정이 두 차례 발표한 대미·대남 비난 담화에서 ‘남조선’이라는 표현 대신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네 차례나 써 눈길을 끌었지만, 이 담화문은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린 것이어서 일반 주민들은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주민들이 시청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한 것입니다.

분단된 이후 남과 북은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정부를 조직하면서 남한은 대한민국,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서로 다른 국호를 정했습니다. 6.25전쟁으로 남북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각기 상대방을 북한과 남조선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와 깃발을 출판물과 방송에 공개하고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남한의 공식명칭을 언급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외부정보 통제가 철저한 북한에서 전후 태어난 세대는 남한의 국기, 국장, 국가는 물론, 공식 명칭조차 모르고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남북관계의 변화로 남한의 지원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처음으로 남조선의 국호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보낸 쌀 포장지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크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에 크게 당황해서 쌀 마대를 쓰지 못하도록 통제하기까지 했습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호는 알아도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금기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기간 북한지도부는 “남조선은 조국의 절반 땅이 미국에 강점된 식민지일 뿐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교육해왔습니다. 북한은 조국통일을 “남조선을 미제의 강점에서 해방하고 남조선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민족해방혁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김일성은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의 숙원으로, 민족최대의 과업으로 규정하고 미제 식민지하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남조선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방력도 강화하는 등 혁명기지를 튼튼히 꾸려야 한다”고 주민들을 교양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등장하면서 이전 김일성 시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2018년 남북수뇌부 회담을 계기로 다시 원위치로 돌리기는 했지만 2015년 북한은 일제통치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구실로 남한의 시간과 다른 평양시간을 새로 정했습니다. 김일성은 남북의 말이 달라지는 것을 우려해서 언어학자들의 글자모양을 고치자는 제의를 반대했지만 김정은은 남북의 말이 같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근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고 주민들이 남한 말을 쓰는 것을 단속, 통제하고 있습니다. 남한을 북한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던 북한지도부가 이제는 남한을 완전히 다른 객체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민들 가운데 국호가 알려지는 것조차 막던 북한이 남조선을 대한민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이 서로 다른 국가로 살아가려는 북한지도부의 의지는 “조국통일은 민족최대의 과업”이라고 말한 김일성의 유훈에 반하는 것입니다. 세습으로 정권을 차지한 당사자로서는 선대 수령의 유훈을 공식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력욕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반대하고 우리 영토를 수복할 멸적의 의지를 다진 것”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대한민국 국호의 공식적 언급은 북한지도부가 북한 주도하의 남한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영토를 수복할 멸적의 의지’에 대한 언급은 북한 지도부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한 방도로 적대적 공존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