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인민이 아닌 핵이 국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 진행 모습.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 진행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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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문제를 기본의제로 토론했습니다. 회의에서는 북한의 핵보유국의 지위를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핵 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 원칙과 조건 등을 규정한 핵 정책 법령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의 핵 정책에 관한 법령 발포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은 1인 독재 국가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법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국가 운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가 지도자 1인의 판단과 결심으로 결정됩니다. 이번 법령에서 “핵 무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한 것은 법의 형식을 이용하여 지도자 개인의 절대적 권한을 확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핵무기 사용 권한을 개인에 일임한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북한은 지도자의 전지전능을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 지도자도 알고 보면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 독재자는 강한 겉모습과 달리 내적으로 누구보다 나약하고 불안감이 심했습니다. 독재를 강화할수록 독재자는 더더욱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고 두려움이 커지게 되며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한 독재자에게 핵무기에 대한 전권을 주었으니 국제사회가 핵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북한은 이번에 채택한 핵 정책에 관한 법에서 핵 사용의 범위를 더 넓혔습니다. 지난 시기 북한은 핵 사용의 범위를 핵 억제력과 핵 보복 타격력에 국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은 핵 사용의 범위를 무한히 확대했습니다. 북한은 핵 사용조건으로 “국가지도부와 국가 핵 무력 지휘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공격”,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 등으로 규정했습니다. 상대방의 핵 보유나 핵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무조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세계를 위협해 나선 것입니다. 특히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문구는 매우 위험합니다. 공격이 임박했다거나 위험에 처했다는 판단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이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면서 6·25전쟁을 일으켰던 선례가 있습니다. 6·25전쟁이 북한의 침공이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북침설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난 시기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담보가 없습니다.

더욱이 북한 지도부는 생명권에 대한 태도가 민주주의국가와 다릅니다. 북한 지도부는 개인의 생명보다 당과 국가가 더 귀중하며 그를 위해 개인은 자신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따라서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의 생명은 별치 않게 여기며 특히 적대세력은 무자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국가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조용히 핵을 보유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인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국제사회를 자극하는 것은 오늘 북한의 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핵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로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핵 자랑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도부도 스스로 자기에게 최면을 걸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김정은은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라고 했습니다. 국체는 국가 주권의 원천에 따른 국가 체제 구분 방식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즉 국체는 국민이며 이를 민주 국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국가라고 주장해온 북한 지도부는 인민이 아닌 핵이 국체라고 합니다. 너무 솔직한 말입니다. 북한 지도부에 있어서 국체는 인민이 아니라 핵이며 인민을 버릴지언정 핵은 버릴 수 없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