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숙청과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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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독재체제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정권들이 정치탄압과 공포에 의존하는 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민들이 자유투표를 통해 자신의 선택으로 정권을 교체합니다. 선거 때 여당이 성공하지 못하면 고위관리직에 있던 사람들은 다음 선거까지 공직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으로 전환한 후, 나중에 자신의 정당이 이기면 다시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특히 북한처럼 3대에 걸쳐 정권을 세습하는 한 가족 독재정권은 주민들을 탄압하고 고위관리들을 교체 하기 위해 '숙청' 이라는 제도를 이용합니다. 공산주의 독재자들이 이용하는 숙청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공산주의 독재자들이 지식인들,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명사들에서, 노동자들과 농부들까지, 독재체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정권을 반대할 수 있는 주민들을 숙청합니다. 그래서 구 소련과 다른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수 백 만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구속되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됐습니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 정권 때 지도자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북한 주민을 차별하는 성분 제도로 그런 사람들을 '적대 계층'으로 분류하여 '연좌제,' 즉 가족과 친지들까지 처벌하는 중세 때의 제도에 의해 3대까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대 계층으로 분류된 북한 주민들은 개신교, 불교, 천주교 신자와 천도교파 당원, 적기관 복무자, 체포자.투옥자 가족, 반당.반혁명 종파, 분자 민주당원, 자본가 등입니다.

숙청의 둘째 단계는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공산주의 고위관리들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1937년과 1938년에 구 소련에서 '대숙청'이라 불리던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스탈린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 공산당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농민 과 소수민족을 탄압했으며, 주변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까지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수감해 학살했습니다. 사상자 수는 공식적으로 68만1천692 명이지만, 실제로는 2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기밀시효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에 따르면, 1937년과1938년에 소련의 비밀경찰이던 NKVD에서 154만8천367 명을 구속했고, 이 중 68만1천692명이 총살되었습니다.

1914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북한의 첫 비밀경찰인 사회안전성을 담당하던 방학세 씨는 김일성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1950년대와 1960년대 많은 노동당 고위관리들과 다른 주민들을 숙청했습니다. 김일성 1인독재와 '주체 사상'을 북한체제의 기본으로 설립하기 직전 10만 명 가까이 정치범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관리였던 탈북 인사에 의하면 이들 중 1960년대7만여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6천여명이 살해됐습니다. 김씨 일가의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 초기에, 또는 김정은 정권초기에 북한당국이 숙청을 이용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2009년이후에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을 포함한 수십명의 북한 고위간부들이 공개처형을 당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리영호 총참모장과 같은 인사들까지 숙청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숙청의 셋째 단계는 정책실패의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독재자 개인숭배, 1인독재와 중앙계획경제에 의해 나라가 실패했는데, 독재자가 직접 책임지지 않고 대신 다른 고위관리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2009년말 북한은 소규모의 초기 시장경제를 탄압하기 위한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이로 인해 많은 북한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모은 돈을 하루 밤에 잃었습니다. 그 이후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개혁 실패의 희생양으로 공개처형을 당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경력도 없고 젊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사망 후 지난 10개월동안 아직 큰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시련이 닥치면 여러 북한 고위간부들이 지도부 실패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