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공산주의 교육제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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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서 10년 살았고, 미국에서 20년 동안 살았으며, 태어났을 때부터 1989년12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19년동안 냉전시대 때 북한과 많이 비슷하던 동구라파 나라 로므니아(루마니아)에서 살았습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로므니아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4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4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명문 고등학교 경쟁률은 아주 높아 입학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면 또다시 어려운 수능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면 명문 고등학교의 학생수는 2학년 때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수능 시험을 본 학생들 중 30퍼센트 정도는 수준이 낮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외국어, 문학, 사학을 포함한 인문과목을 좋아 했지만 제가 다니던 부저우 (Buzau)라는 남부지방 도시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는 수학과 물리학 전공의 과학 고등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대학 영어영문학과 입학시험을 치루기 위해 4년동안 같은 반에 있는 로므니아 국제 수학, 물리학, 화학 올림피아드 팀에 속하던 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어렵게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사실 로므니아 출신으로서 유일하게 과학분야의 노벨상을 탄 과학자는 1974년 수상한 미생물학자 조르제 팔라데 (George Palade)이라는 저의 고등학교 선배였습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로므니아 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학교 입학시험이었습니다.

로므니아는 구소련 군화발의 짓밟힌 1945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약 15년 동안 북한의 성분제도와 비슷한 대학 입시 제도가 있었습니다. ‘인민의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자식들은 대학 입학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정부가 주민들을 계속 탄압하면서도 1961년부터 소규모의 개혁을 어느 정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 제도도 성분보다 학생의 실력과 성적을 바탕으로 하는 제도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당시 공산당 고위간부 자녀들을 제외하고 로므니아 일반 학생들이 유학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1989년까지 로므니아에 있는 비공식 사회계급은 두가지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공식적 노동 계급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지식인 계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 입학시험 합격은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시험은 사람의 운명을 정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부꾸레쉬띠(부카레스트) 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의 1989년6월 입학 시험 경쟁율은 약 20대 1이었습니다. 1차 영어 면접 합격하면 2차 필기 시험이었습니다. 3일 연속으로 하루에 3시간 식 영국 문학, 미국 문학, 로므니아 문법, 로므니아 문학 시험을 쳤습니다. 당시 저의 대학 입학시험 합격은 제 인생을 새롭게 바꿔 놓았습니다. 또한 인생을 결정하던 그 입학시험에 의한 공포감 때문에 가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그 때 입학 시험의 악몽을 꿉니다.

현재 북한 교육제도와 냉전시대 때 로므니아 교육제도를 비교해 보면, 북한은 전쟁 때 교육이 중단되었지만 1950년부터 5년제 초등 의무교육, 1956년부터 4년제 초등 의무교육, 1958년부터 7년제 중등 의무교육, 1967년부터 9년제 기술 의무교육, 1975년부터 2012녀까지 11년제 전반적 의무교육, 2013년 이후 유치원 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포함한 12년제 전반적 의무교육입니다.

북한 당국은 공산주의 시대 때 로므니아처럼 식자율, 즉 주민들 가운데 글을 아는 사람들의 비율이 99.99퍼센트라 주장합니다. 사실 냉전 시대 때 북한 교육제도는 사상교육과 김일성 우상숭배를 우선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준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때부터 특히 시골에 사는 북한 학생들과 선생들은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북한 교육제도의 수준은 많이 낮아졌습니다.

물론 핵심계층에 속한 북한 고위간부들의 자식들은 수준높은 교육기회를 계속 접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엘리트 학생들은 입학 선발시험을 쳐서 입학기준 성적이 제일 높은 학생들 중 정치관료 양성 목적으로 약 1,500명이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며 기술관료 양성 목적으로 약 2,000명이 김책공업종합대학교에 입학합니다.

국가가 매 대학의 정원 수와 수험생 숫자를 결정해 각 도에 추천인원을 배정합니다. 지망자가 가고싶은 대학을 적어내면 군 교육과에서 시험성적, 성분, 지망대학, 활동인원 등을 고려해 대학에 추천을 해줍니다. 북한의 대학교 입학제도는 확실히 고위간부 자식들에게 너무나 유리한 것입니다. 북한의 고위 간부 자녀의 엘리트 코스는 제1고중학교를 졸업하여 3-5년동안 군복무 후 입당하여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간부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 때 로므니아는 인권탄압국이었습니다. 또 독재자 개인숭배를 중요시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시험은 실력과 점수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어려운 전환기를 극복하여 정치, 사회, 경제 개혁을 시행하고 나라를 현대화 시킬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북한 엘리트 학생들 중 세계수준의 우수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북한은 교육제도를 개선하기위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자원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독재자 우상화, 성분제도가 아닌 실력을 바탕으로한 교육제도를 추진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평등한 교육제도가 되면 북한은 21세기 문명국 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