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재기 사례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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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회장

로므니아(루마니아)의 1989년12월 유혈적 반공산주의 혁명 이후 공산당 시절 고위 간부나 관리였던 이들도 민주화된 나라에서 인권을 보호 받고 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로므니아 공산당 총비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주체 사상과 독재자 신격화, 그리고 평양의 웅장한 도로를 접한 뒤 크게 감탄한 나머지 귀국 후 로므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바꾸려 했습니다. 인권 유린,식량 부족과 전력난으로 고통을 겪던 로므니아 사람들은1989년말 마침내 반독재, 반공산주의 유혈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독재자 차우셰스쿠와 남편 위세를 등에 엎고 날뛰던 부인 엘레나도 군사 재판을 통해 처형을 당했습니다.

김일성 정권과 북한 노동당의 입장에서 긴밀한 친구이던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일반 북한 인민들은 바깥세계 정보 통제에 의해 동구라파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로므니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에 유학 중이던 북한 유학생들은 공산주의 독재 체제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그들을 귀국 시켰습니다. 북한 선전 담당 부서는 고위 간부들을 위한 기록영화를 만들면서 1989년 로므니아 혁명 때 독재자, 또 그의 아내와 함께 수백명의 고위 관리들이 사형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로므니아 혁명 때 사형을 당한 사람은 독재자와 그의 아내, 두 명 뿐이었습니다.

반공산주의 혁명 때 민간인들을 죽이라 명령한 로므니아 공산당 간부들과 고위 관리들 중 몇십명은 법에 의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를 설립하면서 새 출발을 하려면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능력과 학벌, 또 노력한 만큼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인권을 보호하는 이러한 사회에서 한 집단을 제외하면서 차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1989년까지 공산당 고위직 사람들도 부활한 로므니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재기했습니다. 차우셰스쿠 시대에 공산당 고위 관리들 중에는 학벌과 능력, 경제적 능력도 있고, 해외 경험도 많고 인맥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는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 중에도 옛날 공산당 고위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옛날 독재시대 감시, 통제와 탄압을 담당했던 로므니아 ‘세쿠리타네’라는 보위부와 관련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법적으로 정치를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독재 시대 비밀 정치경찰을 한 사람들 중에는 정치를 못하더라도 사업으로 성공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차우셰스쿠 시대에 힘들게 살던 일반 로므니아 사람들 중에는 옛날 공산당 고위 관리들이 민주주의 국가인 로므니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독재시대에 고위직 사람이 일반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던 공산주의 사상과 개인 숭배를 포기하고 민주주의, 자유 시장과 인권까지 포함해 문명국의 가치관을 따르게 된다면 독재를 붕괴시킨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들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붕괴된 후 자유투표를 통해 선출된 세명의 로므니아 대통령들은 공산주의 시대 때 당원이었습니다.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공산당 고위간부 출신,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은 대학교수 공산당원, 버세스쿠 대통령은 선장 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므니아를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반공산주의 혁명 25년후 2014년12월21일 처음으로 냉전 시대 때 공산당원 출신이 아닌 클라우스 요하니스는 로므니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될 때 로므니아 인구는 2천3백만명이었고, 공산당원수는 4백만명이었습니다. 현재 북한의 인구는 2천5백만명이고, 그들 중 당원수는 4백만명입니다. 북한 노동당 일반 당원과 간부, 고위관리들 또한 독재를 포기하고 로므니아처럼 개혁과 개방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이 칼럼 내용은 자유아시아방송(RFA)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렉 스칼라튜,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