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식량 부족과 정치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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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때 식량권 제도가 무너졌습니다. 그 이후 국가의 식량 배분을 더 이상 못받는 북한 인민들은 생존을 위해 장마당, 농민시장, 암시장에 계속 의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예방 명목으로 북한 당국이 시장을 심각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본부를 둔 아시아프레스가 북한의 북부도시 공설시장에서 쌀과 옥수수의 판매가 1월부터 전면 금지되었다고 최근 보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해서 인민들이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로므니아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로므니아도 식량부족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소용도 없는 미사일과 핵무기에만 돈을 낭비하면서 식량도 부족하고 식량권 제도도 무너졌지만 사실 북한의 독재 정권이 식량을 국민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공산 독재 시대의 로므니아 상황과 비슷합니다.

1980년대 김일성과 긴밀한 우정을 맺은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국민의 건강 상태를 향상시키는 것을 핑계로 해서 모든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일정한 배급량만 공급해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즉, 독재자가 국민들이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얼마만큼 먹을 수 있는지 공산주의 정부의 법령으로 정하려 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정한 식량은 그 양이 너무나 부족한데다 품질도 좋지 않고 식품 공급 제도도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우유, 빵, 설탕, 계란이나 식용유와 같은 기본적인 식료품을 사기 위해 주민들은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야 했습니다. 식료품뿐만 아니라, 비누, 면도나 화장지와 같은 위생 필수품도 줄을 서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게에 들어온 식품과 생활 필수품의 양이 모자랄 것을 아는 주민들은 새벽부터 온가족이 교대해서, 줄을 서곤 했습니다. 새벽부터 할아버지는 낙농품 가계앞에 줄을 서 우유를 사면 , 할머니가 빵집 앞에 줄서 빵을 사고, 또 다른 가게에 식료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이들이 다른 가계 앞에 줄서 식료품을 사곤 했습니다. 당시 로므니아의 독재자는 외화를 벌기 위해 로므니아산 식료품을 수출했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했지만, 식량 부족을 독재 체제의 탄압 도구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국민들은 식료품과 생활 필수품을 얻기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느라 독재정권의 정치나 경제에 대해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재자의 가족과 공산당 간부들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수입 치즈나 양주까지 공산당 전용 가게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로므니아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외화가 있는 로므니아 사람들도 영어로 이름 지은 ‘샵’이라는 외화전용가게에서 그런 식료품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공산당 전용 가게나 외화전용 가계를 구경도 못 했습니다. 그 것은 오래 전 김정일의 일본인 요리사가 자서전에서 공개했듯이 북한 인민들은 굶고 있지만 김정일과 지도층은 수십가지의 산해진미로 외국음식까지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과 너무도 흡사한 것이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권리, 즉 식량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입니다. 굶고 있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인간의 인내심이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로므니아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 주요 원인 중 식량 부족이 큰 몫을 차지한 사실은 그 점을 입증합니다.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후 로므니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면서 중앙계획경제 제도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추진해 왔습니다. 지금은 그 덕분에 식량 문제는 해결됐지만 자라면서 공산주의 체재 당시 부족했던 영양 때문에 건강이 안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북한의 식량 위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특히 북한 어린 아이들이 걱정되는 것은 북한이 앞으로 경제 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식량 위기를 해결하더라도 어린 시절 영양 결핍은 나중에 성인이 되더라도 큰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