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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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뿌찐(푸틴) 로씨야련방(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지시로 로씨야 군이 약 한달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이 전쟁은 제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구라파 무력 출동입니다. 로씨아 사람들은 이 전쟁에 의해 얻을 것이 없습니다. 북한 정부는 뿌찐 대통령의 편을 들었지만, 사실 이 전쟁의 유일한 원인은 뿌찐 대통령의 과대망상증입니다. 우크라이나군과 민간인들은 조국을 방어하고 있으며 군사력이 훨씬 더 우세한 로씨야 침략자와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로씨야 침략군 수백대의 전투기, 폭격기, 수송기, 헬기, 땅크 (탱크), 장갑차와 다른 전차가 파괴되었습니다. 로씨야 침략군, 우크라이나군과 민간인 중 수천명의 희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만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들이 이웃나라 뽈스까(폴란드), 슬로벤스꼬(슬로바키아), 마쟈르(헝가리) 와 로므니아(루마니아)로 피난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주일 동안 다른 미국 비정부기관 대표들과 함께 로므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 곳곳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난민촌을 방문해 로므니아 정부기관과 로므니아, 다른 나라 비정부기관과 유엔, 국제기구와 함께 인도적 물자를 난민촌으로 배달하면서 그곳의 인도적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현지 조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번 로므니아 방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사태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동구라파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책을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므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위치한 난민촌에서 시민사회 비정부기관, 자원 봉사자, 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유엔에 의하면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4천4백만 명 인구 중 전쟁 난민들은 3백만명 넘게 조국을 떠났습니다. 뽈스까로 1백91만6천명, 슬로벤스꼬로 22만9천명, 마쟈르로 28만3천명, 로므니아로 49만1천명, 몰도바로 35만1천명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로씨야계 소수민족 중 난민 16만9천명은 로씨아로, 2천명은 벨로루씨로 국경을 넘었고, 로므니아로 난민신청을 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4천명이 넘으며 현재 로므니아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8만명이나 됩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난민수와 국내실향민수를 합치면 1천만 명이 넘습니다.

체르니우치 (Cernăuți)라는 우크라이나 도시는 로므니아 북쪽 국경으로부터 30킬로미터 거리에 있습니다.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26만2천명이 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서 그 도시로 이동한 국내 실향민은 20만명이나 됩니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동쪽, 남쪽과 북쪽으로 로씨야의 침략을 집중되고 있지만, 서쪽까지 공격을 당하게 되면 대기하고 있는 국내실향민까지 수백만명이 로므니아와 다른 이웃나라로 피난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인접국과 그 나라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관들은 수백만명의 난민 유입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여성과 어린 아이들입니다. 왜냐하면 18세부터 60세까지 모든 남자들이 징병되었기 때문입니다.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오자마자 로므니아 경찰, 소방관과 경비대는 가방을 들어 주면서 따뜻한 음식, 커피와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줍니다. 또한 그들에게 목적지까지 가는 열차 운행시간표를 가르쳐 줍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로므니아 기차표는 무료입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난민촌 분위기는 음식축제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이스라엘, 로므니아, 스위스, 프랑스, 미국 등 각자의 고유 음식을 요리하여 난민들에게 나눠 주고, 여러나라 봉사자, 경찰, 경비대, 소방관 등 모두 서로 음식을 나눠 같이 먹기도 합니다. 요리하고 음식재료와 물, 커피 등을 보관하여 난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는 봉사자 텐트를 지으려면 약 7,500 유로, 미화로 약 8,250 달러의 비용이 들며, 봉사 텐트를 운영하려면 하루에 평균 1,000 유로, 즉 미화로 1,100 달러 정도 듭니다.

로므니아 봉사자들에 의하면 로씨야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까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 정부와 시민사회 비정부기관들은 처음에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물병과 음식 등을 개인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국경검문소까지 옮겼습니다. 난민 사태가 터질 때 한 시간에 약 500 명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오고 있었지만 로므니아 쪽에는 경찰 두명 밖에 없었습니다. 난민 지원 작업은 정부나 비정부기관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이 운영하는 ‘풀뿌리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로므니아 정부기관과 비정부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일반 주민들의 역할이 계속해서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사태를 지켜보고 난민촌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북한 난민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부터 북한을 떠났습니다. 코로나19 통제 때문에 지난 2년동안 한국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현재까지 약34,000명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 난민 대책을 세웠지만,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를 교훈 삼아 배울 만한 것이 많습니다. 북한에 대규모의 자연 재해, 대기근이나 정치 혼란으로 대규모 난민 사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나 다른 나라 정부기관, 비정부기관들도 북한 관련 긴급상황에 대비해 미리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