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세네갈 정부는 '아프리카 르네상스,' 즉 '아프리카의 부활'이라는 대형 기념동상을 제작해 10년 전인 2010년4월4일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그 동상은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보다 4m정도 더 높으며, 대서양을 향해 손을 뻗은 남성과 여성, 어린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대형 조각상은 세네갈과 북한의 협력으로 제작된 것이며 해외 외화 벌이 차원에서 북한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만들었습니다. 10년 전 세네갈 대통령이던 압둘라예 와드가 '아프리카의 부활'이라는 작품은 자신이 디자인했으며 세네갈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이 커다란 동상은 아프리카 미술과 상관 없는 구 소련식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조각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네갈 사람들은 95%정도 이슬람교인데, 이슬람교는 우상 숭배를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세네갈 종교 지도자들은 이 대형 조각상을 이슬람교가 받아드릴수 없는 우상 숭배라며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또한 이 대형 조각상은 세네갈과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0년 전도 그렇고 요즘도 어려운 금융과 경제 상황에 의해 세네갈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조각상을 만드는 데에는 약 2천만 달러가 들어갔습니다. 실업률 또한 아주 높은데 세네갈 사람이 아닌 북한 기술자와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르네상스'라는 대형 동상은 더욱 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와드 세네갈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네갈 정치인들은 "건축이나 미술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며 짐바브웨와 코트디브와르 대통령 등 여러 아프리카 대통령들을 제막식에 초대했습니다.
북한이 해외에서 조형물을 제작한 일은 여러번 있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국가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인 숭배를 위한 우상화 경험이 많기 때문에, 외화를 벌기 위해 꽁고(콩고), 나미비아, 앙골라, 베닌(베냉), 에티오피아(에디오피아)나 짐바브웨와 같은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조형물과 동상을 제작했습니다.
붉은 제국이던 구쏘련(구소련)으로부터 유래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은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을 거부했습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속이 빈 모형이며 주로 농민이나 노동자, 또 레닌이나 스딸린(스탈린)과 같은 독재자의 커다란 동상을 포함한 미술 스타일입니다. 1989년 말 동구라파와 쏘련의 공산주의가 와해되면서 여러 동구라파 나라들의 국민들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의 동상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독재 초상화는 공산주의 독재가 유일한 유물로 남아 있는 벨라루씨(벨로루쉬), 꾸바(쿠바)나 북한과 같은 나라에만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들 중 북한만이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초상화를 성공적으로 아프리카로 수출한 셈입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공산주의 초상화는 진실되고 수준 높은 예술품을 파괴하며 독재자 개인을 숭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화가들과 조각가들은 표현의 자유까지 포함해 심한 인권 유린을 당했기 때문에, 대다수가 자유민주주의 세계로 망명의 길을 택했습니다. 냉전시대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한 동구라파 나라, 로므니아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세계 미술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루마니아 인물은 추상 조각의 아버지인 콘스탄틴 브른쿠시였습니다. 1876년 태어나 1957년 사망한 브른쿠시는 로므니아에서도 살았지만, '광명의 도시'로 불리던 프랑스의 수도인 빠리(파리)에서 살았습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브른쿠시는 공산주의 국가로 변한 로므니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브른쿠시가 사망한 후 프랑스 정부는 세계문화유산인 그의 작업장과 여러 조각들을 로므니아 정부에게 넘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정부는 프랑스 정부의 관대한 선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브른쿠시의 추상조각이 표현한 자유의 정신이 공산주의 독재와 탄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여러 브른쿠시의 조각들은 로므니아에도 있지만, 프랑스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15년 전 2005년 브른쿠시의 한 조각은 영국의 유명한 '크리스티' 경매에서 2천75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약 15년 전 로므니아에서 1989년까지 공산주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수백 개 초상화 전시회가 중앙 현대미술 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그 전시회는 작품성 때문에 열린 것이라기보다는 로므니아의 젊은이들이 어두운 과거에 대해 배우게 하기 위해 열린 것입니다. 또 이러한 일은 공산주의 만행과 그와 비슷한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의 인권 유린과 독재자 개인숭배로부터 유래한 독재자를 위한 초상화는 공산주의 언론과 선전에 의해 그 당시 '미술'이라 불렸지만, 독재 체제가 무너진 30년 후의 지금은 로므니아 사람들에게는 저속한 싸구려 모방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우셰스쿠와 같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국민들을 굶기면서 옛날 중세시대 귀족처럼 낭비하는 생활양식을 가졌습니다. 물론 중세시대에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귀족들과 왕들의 초상화는 유명한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귀족들과 왕들은 특히 계몽주의 세대에 미술가들을 키우면서 그들을 많이 아끼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반대로 공산주의 암흑시대에 자신들의 초상화를 원하던 독재자들은 자유로운 예술과 미술의 자유 표현을 심하게 탄압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1989년 12월 로므니아에서 국민들의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군사 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독재자 초상화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미술의 가장 기본은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충실한 미술 작품이 거짓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는 독재자와 공산당 간부들의 명령을 따르면서 작품성이 있는 예술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로므니아에서 미술가들은 공산주의 시대 이전의 훌륭한 전통을 되찾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독립된 지 60년을 기념하는 서부 아프리카 나라 세네갈도 본래의 아프리카 미술과 전통을 상징하는 작품을 선택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