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씨 일가 정권은 생존을 위한 외화벌이에 나선 상태로 지하자원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활동이 활발합니다. 북한 정권은 민주꽁고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건설 사업을 포함한 회화벌이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부르끼나파쏘 (부르키나파소)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하여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무기수출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냉전 시대 때는 김일성주의를 아프리카로 수출하려 했지만 김정은 정권의 관심분야는 외화벌이 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유학할때 역시 한국에 유학중이던 많은 아프리카 학생들을 친구로 사귀었고, 또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로 출장을 다니면서 현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로므니아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유산,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로므니아의 전환기와 자유민주주의로 향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김일성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1970년대와 1980년대 북한 정권이 김일성주의와 주체 사상, 북한 정권을 찬양하던 사상을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 특히 신생 독립국가로 수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럽 식민지 시대를 극복한 신생 독립국가에 김일성주의는 설득력이 없어 북한의 사상 수출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해방된 아프리카인들이 필요한 정치, 경제, 사회 개발을 일으키는데 주체 사상이나 김일성주의는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냉전시대에 동구라파(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로므니아 사람들은 인권 유린과 식량 부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공산주의 정부는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가들에게 많은 자금을 줬습니다.
이유는 꼭 아프리카인들의 복지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좋은 이미지를 외국에서 선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므니아로부터 받은 돈은 일반 아프리카인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고, 주로 짐바브웨의 독재자이던 로버트 무가베나 부르끼나파쏘 (부르키나파소)의 토마스 산카라, 잠비아의 케네스 카운다의 은행 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로므니아의 경우 많은 아프리카 학생들이 로므니아 사람과 결혼해 로므니아가 개방된 후 의사, 공학자, 사업가나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로므니아에서 유학한 아프리카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잠비아의 경우 약 15년전까지 만해도 공무원들 중 30% 정도가 로므니아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짐바브웨, 꼬뜨디봐르 (코트디부아르), 잠비아와 탄자니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로므니아의 역사와 반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의 말로는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 로므니아를 많이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주로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공산주의 시대 때 로므니아는 독립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외국 은행과 국제금융기구 (IMF)로부터 빌린 돈을 다 갚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산주의 정부는 로므니아의 도시를 현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프리카인들이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려고 독립운동을 하는데 로므니아가 많이 도와 주었다는 이유입니다.
또한 저의 아프리카 친구들은 로므니아에서 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는지, 로므니아의 독재자와 그의 아내가 왜 사형을 당했는지, 로므니아의 혁명이 일어난 1989년 말을 이해 하지 못 한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에게서 로므니아 공산주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로므니아 공산주의 시대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바꿨다고 합니다.
우선,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정부와 독재자는 자유 투표를 통해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직접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의 외교 정책도 독재자의 소원에 의한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로므니아 사람들은 식량 부족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는데, 로므니아의 얼마 없는 식량과 외화를 다른 도상개발국으로 보내는 것에 원망했습니다.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정부는 로므니아산 곡식과 식품을 대부분 수출하면서, 국민들을 굶기며 외채를 갚았던 것입니다. 사실 외채를 갚는 것보다 외채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외채를 갚으려고 국민을 굶겼던 것은 로므니아 사람들이 아직까지 공산주의 정부를 용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였습니다.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정부는 평양처럼 광중들이 모여 독재자를 숭배할 수 있는 대광장과 커다란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로므니아 수도 부꾸레슈띠 (부카레스트) 구도시를 불도저로 파괴시켰습니다. 500년이나 된 궁전, 교회, 수도원이나 묘지를 파괴시키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야만스러운 범죄입니다. 로므니아의 역사는 전통 건축을 파괴시킨 차우셰스쿠를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로므니아의 정부가 아프리카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와줬다는 것도 사실 새로 독립한 국가들을 공산주의 국가로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책은 사실 공산주의 제국이던 소련으로부터 내려온 명령이었습니다.
저의 모든 아프리카 친구들은 이젠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과거를 제대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로므니아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으로 향하는 전환기와 개혁 정책도 냉전 시대 이후 꾸준히 지켜 왔습니다. 그들은 이제 로므니아 사람들이 왜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는지 확실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현대화, 민주화 과정이 힘들어도 로므니아에서 유학한 아프리카인들은 로므니아의 교훈을 보고 아프리카의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을 확실히 선택하려고 합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