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희망의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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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은 그리스 정교회 부활절이었고, 4월 12일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그리스 정교회, 로씨야(러시아) 정교회와 기념하는 날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탄절과 같이 중요한 날입니다. 이번 부활절은 아주 특별하면서도 비극적이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리스도교이든 이슬람교이든 유태교이든 불교이든 무교이든 자유로이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중국으로부터 유래해 온 세상으로 퍼진 코로나비루스(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번 부활절 예배를 온라인 생방송으로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부활절은 참 힘들면서도 30년 전 부활절 추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1990년의 부활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해 봄은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진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태어난 로므니아(로므니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 뿐 아니라, 로므니아의 온 국민이 다시 시작한다는 '부활'의 의미를 기뻐하며 기념했습니다. 지난 1500년 동안 로므니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그 오랜 기간 로므니아는 교회나 성당에서 기도해 온 민족입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도 로므니아 사람들은 믿음과 종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로므니아 사람들은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신자들에게 희망과 정의를 나타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에, 독재자들은 종교를 두려워했습니다. 사실 이번 코로나비루스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들도 믿음을 갇고 종교에 의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 구쏘련(구소련)의 경우 '공산주의 아버지'인 레닌 이래 모든 독재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일성 독재 체제와 비슷하던 로므니아 차우셰스쿠 독재 시대에도 공산당 간부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미신을 믿는 고집쟁이라며 의심했습니다. 비밀 경찰에 밀고자가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고 하면 그 사람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신자는 항상 공산주의 간부들에게 비판을 당하고, 승진하지 못하고, 해고까지 당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므니아 수도이던 부꾸레슈티에서 살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다 들키면 직장 뿐만 아니라 수도에서 사는 특권까지 잃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부활절이면 어김없이 자정 미사를 드리려 항상 교회에 갔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저희 반에도 밀고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부활절 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담임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즉 부활절 기념 둘째날에 모든 학생들 앞에서 담임 선생님은 문제의 학생이 누구 누구라고 발표하곤 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태도 점수가 깎이고, 나중에 대학교 입학 시험을 볼 때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밀고자를 피해 교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자를 눌러 쓰고 겉옷의 깃을 올리며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고, 다행히도 한번도 담임 선생님 귀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또한 20주년 기념 동창회 모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 시절에는 공산주의 법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제자들에게 사과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사과하고 용서했습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1990년 봄 로므니아 사람들은 45년만에 부활절을 다시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린지 30년이나 지난 로므니아 사람들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고, 교회에서는 신자들을 감시하던 밀고자들도 사라졌습니다. 또 독재자의 비밀 경찰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으며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고, 텔레비전에서도 성경과 관련된 영화를 볼 수 있으며 식량도 부족하지 않아 부활절 음식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활절이 상징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30년전 처음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던 부활절의 추억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그때가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1990년 가을 한국유학 이후 지금까지 부활절을 한번도 로므니아에서 보내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비극적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북한의 수도 평양도 남북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70년 동안 김씨 일가 정권은 북한 주민들이 누려야 할 종교의 자유를 사악하게 유린해 왔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믿음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자유와 종교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공산주의 탄압을 겪다가 30년전 자유의 부활절을 지냈습니다. 이번 코로나비루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부활절을 지낸 것 같습니다. 더 좋은 날이 올 것을 이번 부활절을 지내며 기원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세계 기준의 인권을 찾을 날이 꼭 올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