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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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반 동안 코로나19(코로나비루스) 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이 전염병의 감염자수는 1억6천3백 만명, 또 사망자수는 3백4십만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보건제도와 의약품 산업의 기반이 튼튼하며 투명성과 국제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유럽연합, 한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백신 접종을 확장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의사와 간호사, 많은 의료진들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12일은 국제 간호사의 날이었습니다. 이 기념일은 간호사의 사회 공헌을 기리기 위한 날이며 19세기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1820년에 태어나 1910년에 세상을 떠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간호학을 창설했고 1853-1856크림 전쟁 때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을 직접 발명한 근대식 기술로 치료하며 전설적 인물이 됐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원그림표(파이 그래프)를 발명하면서 통계학 발전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19세기부터 특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기여 이후 전쟁 때나 유행병 시기에도 간호사들은 값진 희생으로 많은 전쟁 부상자나 유행병 환자들을 구해 왔습니다. 한국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6월25일 새벽 4시 '붉은 제국'이던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의 지지를 받은 북한 인민군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뿐 아니라, 여러 나라 용감한 간호사들의 희생도 뒤따랐습니다.

냉전 시대 때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김일성 전 국가 주석의 가까운 우정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로므니아와 북한의 가까운 관계는 그 우정을 맺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약 15 년 전부터 로므니아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로므니아 간호사 2명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1950년대 로므니아는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힌 공산주의 독재 체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부터 전쟁 이후 1957년까지 로므니아 적십자사는 같은 소련의 위성 국가이자 공산권 동맹국이던 북한으로 의사와 간호사 약 220명을 포함한 7개의 의료단을 파견했습니다.

로므니아 의료단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파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로므니아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명을 찾아 그들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 씨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 파견된 후 국제 적십자사가 수여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메달 (The 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수상하였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왔던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먼 곳에 있는 아시아 나라까지 돌볼 기회가 생기자 아주 젊은 나이에 스스로 북한으로 갔습니다. 그녀들에 따르면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모두 자원자였습니다. 로므니아 의료단들은 본국에서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북한 국경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로 갔습니다.

두 여성은 한국어를 몇 가지 정도 배웠지만, 북한 사람들과 하는 의사소통은 로씨야 (러시아) 말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므니아 간호사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어머니"라 부르곤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주변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17살 때 한반도에 도착한 엘레나 젤레뉵 씨는 유탄을 맞아 다리를 절단할 뻔했지만, 유럽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26세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로므니아 간호사를 구해준 그 젊은 의사는 전투를 하다 사망했습니다. 부상을 입은 엘레나 젤레뉵 씨는 김일성 주석의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로므니아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한국전쟁의 정치적, 이념적 원인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은 정이 많았고, 서로 증오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에 관한 로므니아 사람의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로므니아 독자의 의견을 실은 인터넷 블로그로 보면 엘레나 젤레뉵 씨와 이와나 크루챠누 씨가 한 인터뷰가 일반 사람이 잘 모르는 역사를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과1950년대 로므니아에서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인사 수만 명이 교도소와 강제노동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로므니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이럴 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북한으로 파견됐다 해도 사실 한반도를 분단시키면서 북한에 로므니아와 다른 소련 위성 국가처럼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같이 엇갈린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독자들은 로므니아에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국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개선은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또한 한국전쟁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남북한 화해와 통일 과정이 더 빨리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